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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으로 정신 병원 들어가기

by 윤재


39. 제정신으로 정신 병원 들어가기



인간의 사고 기능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고차원적인 기능의 하나입니다.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사고 능력은 더 성숙하고 정교하게 됩니다.

내적 또는 외적 상황으로 안타깝게 이 사고 기능에 이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게 됩니다.



망상, 환각, 혼란스러운 언어와 현실을 왜곡하는 부적응 행동을 보이는 심각한 정신질환의 하나가 조현병(Schizophrenia)입니다.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인 유진 블로일러(Eugen Bleuler, 1857 ~ 1939)는 이러한 환자들이 특징적으로 사고 과정의 이상 및 혼란을 보이고, 생각과 감정의 불일치를 보이며, 현실감각이 없어지는 것과 관련하여, 이들에게 ‘균열’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schizo’와 ‘마음’을 뜻하는 그리스어 ‘phren’을 합성하여 schizophrenia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정신분열병이라는 용어로 사용돼 가다 201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이 용어가 편견과 낙인을 조장한다고 하여 조현병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조현병의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조율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조현지법(調絃之法)』에 나오는 내용으로, 부처가 거문고 줄 고르는 법에 비유해서 “정진도 너무 조급히 하면 들떠서 병나기 쉽고, 너무 느리면 게을러지게 된다”라고 제자를 가르쳤다는 데서 나온 내용이라고 합니다. 현악기의 줄이 적당히 팽팽한 긴장을 유지해야 제 기능을 발휘하듯 인간의 정신도 적절하게 조율이 되어야 기능이 유지된다는 의미이지요. (출처: DSM-5에 의한 최신 이상심리학, 이우경저)



조현병은 다양한 인지, 정서, 행동적 기능 부전을 포함하기 때문에 장애 특유의 단일한 증상은 없습니다. 이 조현병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직업 및 사회 영역의 기능 손상과 관련된 징후와 증상군을 면밀히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상당히 이질적인 임상증후군이기 때문에 같은 진단을 받은 사람들일지라도 세부적인 증상과 특징은 개인의 신체, 심리, 사회 및 학습력에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정신 질환의 진단은 개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요소입니다. 개인의 사회적 제한뿐만 아니라 개인이 행사하는 재정적인 권한을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적 진단이 항상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암이나 감염 질환은 자세히 현미경으로 보면 병변이 보이기 때문에 의사가 내린 진단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병변이 눈에 보이지 않고 더욱이 개인이 자신의 병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진단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정신 질환을 진단하는 데에는 오랜 기간의 임상 자료를 축적 합의한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심도 있는 인터뷰와 다양한 장면에서의 관찰이 필요합니다. 개인이나 주변 가족이나 지인이 보고하는 정보로 진단하기에는 제한적인 면이 많이 있습니다. 충분하지 않은 정신의학의 정보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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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대표적인 사례로 데이비드 로젠한(David Rosenhan)의 실험과 수재나 캐헐런(Susannah Cahalan)의 저서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로 스탠퍼드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한 데이비드 로젠한(David Rosenhan, 1929~ 2012)은 정신 병원의 진단 신뢰도를 시험하기 위해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정신 분석의들의 사회적 통제력이 지나치다고 생각한 로젠한은 과연 정신과 의사들의 실제 진단 및 치료 실력이 그들이 행사하는 영향력에 걸맞은가를 판단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8명의 가짜 환자를 정신 병원에 입원시켰고, 이들은 환청이 들린다고 보고한 것 외에는 정상적인 행동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정신 질환자로 진단받은 이후, 이들은 모두 정신병자로 취급되었으며 평균 19일 동안 병원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로젠한의 실험은 우리가 투과하는 렌즈에 따라 세상이 언제나 왜곡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으로 정신 질환 진단의 신뢰성 문제를 부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로젠한은 1973년에 자신의 논문을 <정신 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 On Being Sane in Insane Places>를 과학 잡지 <사이언스>지에 발표했습니다. 그는 논문을 통해 한 인간의 정신 진단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내려지며, 그런 진단이 엄청난 실수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어떤 진단도 크게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로젠한의 실험은 다채롭고 강력하지만, 결함을 내포하고 있고 많은 논쟁을 야기했습니다.


연구를 진행하기에 앞서, 그리고 진행 과정, 연구 결과 발표 등에 연구윤리와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심의를 준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실성 유지와 생명윤리, 연구분야의 윤리규범 준수 등이 연구윤리에 포함되지요. 과학연구의 전 과정에서 속임수, 부주의, 자기기만 등으로 인해 정확성과 객관성에 결함이 있는 여부를 포함하며 실험 대상에 대한 생명윤리,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성, 논문저자 표시등 공로 배분의 공정성, 연구실 문화의 민주성 등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렇긴 해도 교묘하게 허점을 공략하는 부정행위를 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연구 과정의 실질적인 기여도가 없는데도 논문저자로 표시되거나 통계를 포함한 연구 결과를 조작 또는 왜곡해서 발표한다든지......

올바른 방법이나 길이 있음에도 사잇길이나 지름길, 바르지 않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미국 New York Post의 기자였던 수재나 캐헐런(Susannah Cahalan, 1985 ~ )은 희귀 자가면역 질환인 항-NMDA 수용체 뇌염으로 입원한 경험에 대한 회고록 『Brain on Fire: My Month of Madness』를 발표했습니다. 촉망받는 기자였던 저자는 갑자기 심한 건망증과 환각증세 등과 조울증처럼 감정 기복이 심한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증상으로 스물네 살의 나이에 삶을 뒤흔드는 정신질환 오진을 경험합니다. 병명은 ‘자가면역 뇌염’이었지만 의사들은 차트에 ‘조현병’이라고 적었으며, 꼼짝없이 잘못된 정신질환 치료를 받았고 결국 정신병원 강제 수감이 결정되기에 이르렀지만, 한 의사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으로 정확한 병명을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신체질환을 정신질환이라고 진단한 오진, 조현병이라는 꼬리표는 육체와 정신을 사지로 끌고 갔지만, 저자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클로이 머레츠가 연기한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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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WATCHA



그녀는 자신과 같은 오진의 희생자가 또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저자는 이 문제를 탐구하는 데 전념하다가 ‘로젠한 실험’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

데이비드 로젠한이 던진 중요한 질문을 따라 실험을 파헤치기 시작했지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사실을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로젠한이 왜 정신의학의 기반을 흔드는 실험을 계획했는지, 왜 이런 실험이 가능했고 가짜 환자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데이비드 로젠한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지금껏 밝혀지지 않은 실험의 미스터리한 진면모를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2019년의 저서,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The Great Pretender: The Undercover Mission That Changed Our Understanding of Madness』에서 로젠한의 연구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가 실제 실험 데이터를 왜곡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캐헐런은 정신과 진단의 오류를 부정하기보다는, 정확한 진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신 건강 전문가들이 충분한 훈련과 검증된 방법론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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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헐런은 2020년 Yale University에서 Poynter 저널리즘 펠로우십을 수상했고, Cornell에서 정신의학 역사에 관한 Richardson 세미나를 수상했으며, 2020년 Columbia University에서 Spitzer 기념 강연을 수상했습니다


“불확실함이라는 공통점을 제하면 정신의학은 다른 의학 분야와 결정적인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어떤 분야도 강제로 치료하거나 억지로 사람을 감금하지 못한다. 다른 어떤 분야도 질병인식불능증 같은 상황에 정기적으로 맞닥뜨려 골머리를 앓지 않는다. 질병인식불능증은 병에 걸린 사람이 그 사실을 몰라서 의사가 어떻게 언제 개입해야 할지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정신의학은 사람들에 대해, 그러니까 우리의 성격, 우리의 믿음, 우리의 도덕에 대해 판단을 내린다. 그것이 실행되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셈이다.”... p. 29,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중에서,



정신 질환 진단의 정확성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올바른 진단의 정확성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신 질환 진단은 강한 사회적 낙인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로젠한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일단 환자로 낙인찍히면 그가 하는 정상적인 행동조차도 병리적으로 해석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신과 진단이 신뢰를 잃으면, 도움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이 적절한 치료의 혜택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젠한 실험과 수재나 캐헐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정신과 진단이 얼마나 불완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더욱 신중하고 체계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정신 건강 문제는 단순한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요소가 깊이 얽혀 있는 만큼, 보다 정밀한 연구와 윤리적 책임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정확한 진단을 위한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이야말로, 정신 건강 치료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낙인을 줄이는 핵심적인 해결책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 진단의 상황으로 가지 않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각자가 심리적 안녕감(psychological well-being)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심리적 안녕감은 기존 심리학적 이론들을 통합하여 심리학자 캐럴 리프(Carol Diane Ryff, 1950 ~ )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주관적인 삶의 질, 개인의 인생 목적과 방향, 대인관계 만족, 자아실현 정도 등에서의 기능 정도가 행복한 삶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정신건강의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고 자신과 타인의 삶의 질을 돌보는 자세, 정신 건강이 간과되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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