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제작된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 Letters to Juliet>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사랑은 때로는... 말로 다하지 못한 감정의 총합입니다.
너무 커서 입 밖에 낼 수 없거나, 또는 너무 작고 사소해서 숨어버리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편지에 담습니다.
가슴에 담은 마음을 꾹꾹 눌러 글자에 새기고, 손끝에서 번진 잉크 자국을 따라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곤 합니다.
사랑의 편지를 다시 세상에 불러낸 영화 중에 <Letters to Juliet>은 낡은 벽돌에 꽂힌 편지들이 시대를 넘어서는 감정의 증거가 됩니다. 그곳에 쌓이는 글들은 오래된 사랑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때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의 사랑을 예고합니다.
영화 <맘마미아>와 <레미제라블>에 출연했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은 시간이 흘러도 진정한 사랑은 늦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사랑의 도시이며,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베로나’를 무대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의 줄거리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베로나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작가 지망생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약혼자 빅토(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함께 베로나로 여행을 떠납니다. 소피는 ‘줄리엣의 발코니’ 돌벽에 비밀스러운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써넣는 여성들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녀는 우연히 돌담에서 편지를 수거해서 그들에게 답장을 써 주는 일명 ‘줄리엣의 비서’들을 알게 됩니다. 소피아는 그들과 함께하면서 돌 틈에서, 우연히 50년 전에 쓰인 낡은 러브레터 한 통을 발견하고 편지 속 안타까운 사연에 답장을 보내게 됩니다.
‘what과 if는 세상에서 가장 위협적이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그 두 가지가 만나면 당신을 평생 괴롭힐만한 힘이 생기죠. 만약에(what if)? 만약에! 만약에. 당신 얘기가 어떻게 끝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느꼈던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다면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그때도 진실이었다면 지금도 아니란 법은 없어요. 당신의 마음을 따라갈 용기만 있으면 돼요. 줄리엣의 사랑이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어요. 사랑하는 이들도 떠나게 하는 사랑, 바다도 건너는 사랑. 하지만 난 믿고 싶어요. 언젠가 그 사랑을 느끼면 난 그 사랑을 잡을 용기가 있을 거라고요. 그리고 클레어, 아직 용기가 없었다면 언젠가 생기길 바라요. 내 모든 사랑을 담아 - 줄리엣 드림’
며칠 후, 소피의 눈앞에 편지 속 주인공 클레어와 그녀의 손자 찰리가 나타납니다.
소피의 편지에 용기를 내어 50년 전 놓쳐버린 첫사랑 찾기에 나선 클레어.
할머니의 첫사랑 찾기가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손자 찰리.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게 된 소피.
65세의 여성이 된 클레어는 50년 전 놓친 사랑, 이름이 같은 사람만 74명이나 되는 그곳에서, 사랑 찾기는 성공할까요?
그리고 약혼자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소원함을 느끼던 소피에게는요?
(사진들 출처: Films 2 watch)
(사진 출처: Quick Whit Travel)
영화 덕분일까요?
지금도 베로나의 '줄리엣 집'에는 각자의 사연을 담은 더 많은 편지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답니다.
유통 기한이 없는 사랑이라니....
무한한 우주를 항해하는 동안의 변화하는 시공간 속에서 두 남녀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서간물 소설인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연장선 상에서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소설들은 시간을 건너는 편지들, 우주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 『미래로 가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김보영 작가의 SF 소설 세 권을 일러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로 불리기도 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에게 가고 있어』 이 두 편의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달되는 편지 형식을 빌려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 도달하려는 그 절절함은 인간의 기술이 닿지 못하는 감정의 영역을 조명합니다.
서희원 평론가는 이 소설들이 ‘광속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간극 사이를 표류하는 외로운 인간 영혼에 대한 서사시이며, 사랑이라는 낭만적 열정을 하늘의 성좌처럼 바라보며 가야 할 곳을 찾아 우주를 항해하는 인간들에 대한 찬미이다’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감각과 생각의 범위를 넓혀줄 수 있는 책으로, 저자인 김보영 작가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주를 사랑하는 것이며,
한 사람을 위한 일은 우주를 위한 일이고,
한 사람을 위한 선물은 우주를 위한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라면서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와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빛의 속도로 항해하는 우주선의 개발과 이를 통해 성간星間 여행이 가능해진 “21세기”, 그러나 그렇게 멀지 않은 근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광속으로 성간 여행이 가능해진 시대에 남자와 여자는 지구 시간으로 “9년”, 우주 시간으로는 “2 달“ 후에 있을 결혼식을 약속하며 헤어집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는 남자의 편지이고, 『당신에게 가고 있어』는 여자의 편지입니다.
남자는 지구에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경험하게 되는 “9년”이라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기다림의 배”를 타고 두 달간 태양계를 광속으로 여행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우주에서의 몇 분은 지구에서의 몇 년이 된다고 합니다.
책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선장이 착오로 시간선을 잘못 탔대. 얼마나 늦어지냐고 했더니 우리는 몇 분 차이 안 난대. 하지만 지구에는 3년 후에 도착할 거라는 거야” (p. 20)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해도.
오래전에 어느 별에 정착해 좋은 사람 만나 아들딸 열쯤 낳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한 생을 마감했다 해도.
혹은 어느 빛의 궤도에 올라, 지구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아득한 여행을 하고 있다 해도.
어쩌면 아득한 성계 너머에서 이제 막 배에서 내리며, 어린 날의 가벼운 추억거리처럼 나를 회상하고 있다고 해도.
『당신에게 가고 있어』 여자의 시점은
“잘 지냈어? 나 지금 가고 있어.”로 시작합니다.
예상과 다르게 늦어지는 귀환에 대해,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내 집은 공간에 있지 않다고.
내 집에 사람에게 있다고.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신이라고. 당신이 내 집이고 내 고향이라고..........
예쁜 말 해 줬으니 늦는 거 용서해 주기야.
내가 지금 집에 가고 있어.
기다리고 있어 줘.”...(p.20)
그러다가 더 늦어지지요.
“당신에게 가고 있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해도.
어느 먼 지난 시절에 지구를 떠돌다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해도.
어딘가 정착해서 가족을 이루고 작은 오두막 하나 짓고 오순도순 살다가,.
가끔 아이들에게 “그래, 결혼할 여자가 있었지. 약속을 어기고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말이야” 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늙어서 작은 무덤 하나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p.82)
김보영 작가의 우주적 사랑 이야기 방식인 편지라는 형식은,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을 이끌어냅니다. 김보영 작가는 우주 과학이라는 언어로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정서는 극히 인간적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마음의 기록은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에서도 섬세하게 펼쳐집니다.
『츠바키 문구점』 속 주인공은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해 편지를 써주는 대필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아메미야 하토코(포포)’가 쓰는 편지에는 진심, 사과, 사랑, 이별 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시간을 건너고, 기억을 지나고, 삶의 어느 시점에라도 닿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편지’의 힘이며, ‘사랑’이 도달하는 방식입니다.
『츠바키 문구점』은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츠바키 문구점을 운영하며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이 담긴 편지를 대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편리한 디지털 시대에 잊혀 가는 손편지의 온기 어린 따뜻함을 잔잔한 감동으로 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소설 속에는 “먹을 가는 작업에는 진정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나는 오랜만에 의식이 엷어지는 듯한 기분 좋은 감각을 온몸으로 맛보았다.
졸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의식이 어딘가 깊고 어둡고 끝없는 곳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고
빠져들어가는 것이다. 앞으로 한 걸음 더 가면 황홀의 경지에 이를 것 같았다.
먹의 짙기를 확인하느라 시험 글씨를 써본 뒤 관제엽서에 받는 사람 이름을 썼다.
상대방 이름을 틀리지 않도록 쓰는 것이 편지 작법 중 선대에게 가장 먼저 배운 것이다. 주소는 편지의 얼굴이라고, 선대는 누누이 말했다.
그러므로 더욱 정중하고 아름답게, 알아보기 쉽게 써야 한다....(p.26)“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무념으로 먹을 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인데, 요즘에는 이미 만들어진 먹물을 팔고 있지요.
또한 대필을 의뢰한 사람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필기구, 편지지, 봉투, 우표 등을 선택하는 과정도 기술되어 있습니다.
”내 경우, 어떤 식으로 편지를 쓸지 이미지가 어렴풋이 떠오르면 필기구를 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같은 글을 써도 볼펜과 만년필과 붓펜과 붓은 느낌이 전혀 다르다.....
생각 끝에 벚꽃 씨에게 보내는 편지는 유리펜(glass pen)으로 쓰기로 했다.
소노다 씨의 그 투명하도록 선한 마음을 전하는 데 유리펜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았다.
이 편지를 소노다 씨가 사쿠라 씨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이 되게 하고 싶었다....
종이는 유리펜과의 궁합을 생각하여 표면이 매끄러운 것을 골랐다....
크기는 엽서 크기로 했다.
여러 장의 편지를 쓰면 사쿠라 씨가 무겁게 느낄 테고, 그렇다고 엽서를 그대로 보내면
제삼자가 보게 된다. 소노다 씨의 마음은 그렇게 가볍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 중간으로 엽서 크기의 종이를 봉투에 넣어 보내기로 했다.
그러면 사쿠라 씨 외에 다른 사람이 편지를 볼 일도 없을 테고, 사쿠라 씨가 소노다 씨의 마음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받아들일 걱정도 없을 터다.
잉크는 적갈색으로 정했다. “...(p. 90)
조문 편지를 쓸 때는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린 바람에 먹물이 연해졌다는 의미로
연하게 글씨를 써야 한다는 선대(할머니)의 가르침을 주인공은 기억합니다.
지난 여행에서는 가마쿠라를 가보고 싶었습니다만, 함께 가는 옆지기에게 설득이 부족했었는지 동의를 얻지 못해,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편지를 써주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자기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게 됩니다. 사랑은 그래서 타인과 나 사이의 조율이자, ‘오해’와 ‘이해’의 간극 속에서 피어나지요.
이 간극은, 통통 튀는 감각을 지닌 이슬아 작가와 응급의학과 교수인 남궁인, 두 사람의 서간에세이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에서는 서간문의 본질에 대한 기술에서도 드러납니다. ”작년 6월에 쓰신 첫 번째 편지에서 선생님은 말씀하셨어요. “문득 남을 생각하다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서간문의 본질“이라고. 사실 저는 쭉 반대로 생각해 왔답니다. 서간문의 본질은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이 문득 남을 돌아보게 되는 과정이라고. 양쪽 다 진실인 것입니다. 서간문의 본질은 다양할 테니까요”...(p. 205)
서툰 표현, 엇갈린 타이밍, 그리고 침묵 속의 진심.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을 어렵게 하지만, 편지라는 매체는 그 간극을 메우는 사다리가 됩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를 비롯한 여러 지인들과 나누었던 126통의 편지를 담은
『영혼의 편지』는 빈센트 반 고흐의 생각과 생활, 그를 둘러싼 환경 등을 엿볼 수 있지요. 특히 그가 동생에게 보낸 그림에 대한 설명들은 반 고흐의 작품을 좀 더 화가 자신의 입장에서 자세하고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그의 편지를 통해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p.99)“는 고흐의 생각을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해하게 됩니다.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는 철학적 배경은 다르지만,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 간의 서신 교류 역시 내면의 성찰과 관계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깊은 통찰을 알 수 있게 합니다.
한때, 편지는 마음을 전하는 가장 깊고 섬세한 방식이었습니다. 종이 위에 흐른 잉크의 선율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을 넘어, 사람의 체온과 시간을 함께 담았지요.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파도 속에서 손글씨는 점점 잊히고 있습니다. 빠른 메시지와 화려한 이모티콘들이 감정을 대신하면서, 우리는 점점 ‘천천히 쓰고, 기다리고, 느끼는’ 방식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 감성을 담은 편지들이 다시금 감동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문장으로 엮어내는 장면들 속에는 글씨체와 종이, 잉크의 색깔까지도 중요하게 여기게 합니다. 손 편지 한 장이 누군가에게는 유언이 되고, 용서가 되고, 새로운 시작이 됩니다. 편지 속 손글씨가 단순한 기록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예술임을 조용히 일깨우게 합니다.
영화와 책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편지라는 매개를 통해 가장 인간다운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닿고 싶어 한다고요.
느린 손 편지 속에는 기다림이 있고, 기다림 속에는 진심이 있습니다.
디지털의 속도 속에서 무뎌진 감각을 다시 깨우는 방식은 어쩌면, 조용히 한 장의 편지지를 꺼내 써보는 일에서 시작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지는 흔들리는 감정의 기록이며, 사랑은 그 감정을 지탱하는 이름입니다. 물방울처럼 모여 어느 날 한 줄기 강물이 되어 흐르듯, 우리는 그렇게 편지를 쓰고, 사랑을 합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사랑을 말하는 대신, 한 장의 편지를 꺼내 씁니다.
그리고 그 잉크 끝에 적힌 말은, 언제나 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