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러는 거야?
아침부터 설레는 이유는 오늘이 바로 영종도에 사는 M엄마네로 놀러 가기로 한 그날이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거북이 고기를 삶아 먹었나? 느릿느릿 세월아 네월아 하는 시간관념 없는 아들내미에게 한 번쯤 화를 냈을 뻔도 한 날이지만, 좋은 날이기 때문에 꾹 눌렀다.
"아들, 잘 다녀와?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고!"
"제가 도움이 필요해요!"
아들은 쌩하고 가버렸다.
아들이 나가자마자, 나는 아들 등교 만세를 부르며 급하게 우선 몸에서 반찬냄새가 나면 안 되니, 몸을 깨끗이 씻고 나름 나만의 정장인 스티브잡스룩을 완성했다. 거울 앞에 선 내 모습 나름 봐줄 만하다.
가끔 놀러 오는 동생이 누나도 이제 더 이상 동안이 아니야, 화장을 해도 나이 들어 보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뭐 내 마음은 청춘이다.
나는 이렇게 준비를 다 마치고 윗집에 사는 H엄마와 함께 곧장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J엄마를 만나 드디어 영종도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M엄마에게 자꾸 전화가 왔다. 우리가 제대로 못 내릴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M엄마는 그린나래지하차도에서 내리는데, 꼭 영종대교를 지나고 나서 벨을 누르라고 누차 강조했다.
우리는 버스에 맨 뒤 자리에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떨면서 갔는데, 초행이라 긴장을 하면서 나는 어느 정거장에서 내려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참고로 나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안 듣고 내 멋대로 하는 고집이 있다. 이런 성격이 때때로 나를 피곤하게 하는데 그날도 그랬다.
버스는 이내 송도를 지나 영종대교로 들어섰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은 그린나래지하차도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급하게 하차벨을 눌렀다.
버스운전기사님이 갑자기 차를 멈추더니, 문을 열고 닫았다.
뭐지? 왜 그러시는 걸까?
영종대교는 끝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또 한 참을 갔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 촉이 들었다. 그래서 난 무슨 신의 계시를 받은 듯 다시 벨을 눌렀다.
버스운전기사님이 또 차를 멈추더니 문을 열고 닫았다.
그러더니 버럭 화를 냈다.
"거... 왜 자꾸 벨을 누르는 거예요? 그만 눌러요!"
"어... 죄송합니다."
그제야 왜 M엄마가 영종대교 지난 다음에 벨을 누르라고 했는지 이해했다. M엄마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승객들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쥐구멍 아니 개미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게 해외여행을 가는 기분을 잠시 내주었던, 그리고 몇 년 만에 느껴보는 아주 큰 무안함을 주었던 영종대교를 드디어 지나 이름도 긴, 그래서 외우기 힘들었던 그린나래지하차도 버스정류장에서 이제 내리려고 하는데,
버스운전기사님이 하차태그를 하는 나와 H, J엄마에게 가자미눈을 뜨면서 화를 또 냈다.
"거! 타면서부터 계속 떠드네!!!"
우리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도 같이 혼나니 덜 창피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뒷좌석에서 떠들다가 그때도 버스운전기사님께 혼났는데, 어쩜 난 내일모레가 쉰인데도 하나도 안 변했을까? 정말 반성한다... 그래도 반말은 좀... 심하지 않았나 싶다...
버스에서 뒤통수에 기사님의 욕을 때려 맞고 온갖 창피함을 떠안은 채, 우리는 후다닥 내렸다.
H엄마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만 떠든 거 아니라며 억울해했다.
사실 우리가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서 조용히 좀 해달라고 한 적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남동공단떡볶이집에서도 주인아저씨가 시끄럽다고 다른 손님들 식사 방해가 된다고 했었었다.
이뿐만 아니라 흥륜사 야외식당에서도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섰을 때, 서빙하시는 얌전한 아저씨가
'휴, 이제야 가네!'하고 말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유일하게 시끄럽지 않았던 적은 팔공티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 때였다.
그 당시에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팔공티에서는 칠팔십 대의 할머니들이 온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우리는 역지사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창피함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다음부터는 공공예절을 잘 지켜보자고 했다.
그리고 M엄마가 우리를 버스정류장으로 데리러 오는 동안 잠시 우리는 서있었다.
한 겨울이라 몹시도 추웠다. 바닷바람 때문인지 더 춥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J엄마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날이 추워져서 이제는 기모바지를 사야겠어."
그러자 H엄마는,
"기무바지가 뭐야? 발음을 똑바로 좀 해라, 못 알아듣겠다."
사실 H엄마가 J엄마보다 대 여섯 살은 더 많은 언니이다. 우리들 중 나이로 따지면 서열 3위이다.
그리고 J엄마는 막내지만 당돌한 면이 있다.
"아니, 내가 기모바지라고 했다고!, 똑바로 들으라고! 귀를 좀 파줄까? 언니! 내가 기모바지라고 하는 거 언니도 들었죠?"
"어... 기모바지라고 나도 들었는데..."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확실하진 않았다.
"아니야, 언니 얘 기무바지리고 했어!!"
둘이 별거도 아닌 걸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게 마구마구 막말을 했다.
나는 조금씩 뒷걸음쳐서 이 두 사람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아까 버스에서부터 겪었던 창피함이 점점 커져
지금 그 순간에는 눈덩이처럼 부풀어 오른 느낌이었다.
순간 주위를 둘러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황량했다.
다행이다. 이제 그만 좀 해...
그런데 H엄마가 장난처럼 말했다.
"아우야, 그만 우겨라... 에잇 난 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다. 퉤퉤.."
그런데 나라면 황당해서 그냥 웃고 말았을 텐데, 이에 질세라 J엄마도 만만치 않게 대응했다.
"그럼 나도 같이 침 뱉을 거야! 퉤 퉤 퉤..., 아... 아쉽네. 가래침을 뱉어줬어야 하는 건데.."
H엄마보다도 더 세게 나왔다.
둘은 막 웃으면서 장난으로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가 진짜 침이 나오기도 했다.
이것이 진정 나이 40대인 주부들의 모습인가?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서로 양보하고 예쁜 말만 하라고 다그치던 그녀들 아닌가?
혹시 유유상종이라고 했는데, 나도 저들과 같이 약간 모자란 걸까?
나는 점점 뒷걸음을 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노력했다. 일행이 아닌 것처럼...
다행히 곧 버스정류장으로 M엄마가 우리를 마중 나와 주었고 우린 곧장 M엄마네 집에 갔다.
M엄마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J엄마가 말했다.
"어머, 언니, 살 빠졌다... 왜 이렇게 살이 빠진 거야... 이것 봐... 얼굴이 홀쭉해졌네... 그리고 전에는 티셔츠가 꽉 끼었는데, 티셔츠가 헐렁해졌어... 비결이 뭐야?"
365일 다이어트를 하는 M엄마... M엄마는 엘리베이터 사람들 앞이라 창피했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해... 남들이 웃어... 전에는 그럼 얼마나 살이 쪘냐고 생각한 단말이야... 나 아직 더 빼야 해!, 아 진짜 창피하다고! 그리고 이 티셔츠 잘못 빨아서 늘어난 거야!!!"
"아니야... 언니 지금 엄청 날씬해..."
"그만하라고!"
둘은 아웅다웅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까처럼 M엄마가 H와 J엄마처럼 기분 나쁘다고 스타크래프트에 나오는 저그처럼 침을 뱉는다고 하지는 않았다. 역시 지성인다워... 그나마 우리 중에 제일 정상이라고 우리가 인정하는 엄마답다.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맛있는 닭발냄새가 솔솔 났다. 역시나 식탁 위에는 닭발이 두 군데에 산 봉우리처럼 솟아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인덕션 위에는 엄청나게 어마무시하게 큰 솥이 있었다. 그 안에서 닭발들이 두 발을 들어 우리에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었다. 엄마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자리에 앉자마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나는 침을 꿀떡꿀떡 삼키며 파블로프의 개처럼 집주인의 "자아, 드세요~!"라는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엄마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곧 M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찜을 닭발이 놓인 접시 가운데에 살포시 놓았다. 계란찜은 두 닭발 산옆에 엄청 뜨거운 활화산처럼 보였다.
"자아, 이제 드세요~!" M엄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리는 달려들었다.
역시 매콤한 닭발도 맛있고 계란찜도 맛있다.
"아니, 닭발 레시피가 어떻게 돼? 너무 맛있다, 유명 닭발집 맛이 난다." 내가 말했다.
"음... 내가 직접 양념을 했는데 사실은 떡볶이 양념을 조금 더 첨가했어..."
"아... 그렇구나, 그런데 이 계란찜도 환상적인데, 레시피 좀 알려주라."
"어 언니 그거 동그란 거 그거 뭐냐? 아 그래 동전육수를 넣고 한 거야. 간단해!"
"좀 더 자세히 알려주라."
"그러니까 동전육수를 물에 우선 500개를 넣어."
"어? 뭐라고?"
M엄마는 본인도 무척이나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니, 크크크... 그러니까... 크크크... 물 500미리에 동전육수 3알 정도..."
우리 중에 제일 정상인 M엄마가 이러는 걸 보면 확실히 유유상종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