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있는 파스타 전문점에서...
오늘은 아이들의 방학식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은 늦잠도 자고 학교를 안 가니 (물론 학원은 가지만) 좋겠지만, 엄마들은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한다. 만날 때마다 우린 심각한 얼굴로 물어본다.
"오늘 반찬 뭐예요?" "요새 뭐 해 먹어요?" 삼시세끼 차리는 엄마들의 고충은 바로 반찬을 뭘 하면 좋을까 일 것이다.
오전에 갑자기 H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이제 나갈 준비하고 있어. 곧 영종도에서 M엄마와 T엄마가 넘어올 거니까... 그럼 대기하고 있어. 오늘이 방학식인데, 우리 이제 만날 시간이 없으니... 오늘 맛난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정말 기다리던 전화였다.
잠시 후, M엄마의 차를 타고 우린 남동구 쪽에 파스타 전문집으로 향했다.
구옥을 개조해서 만든 유명한 파스타집 앞에서 우린 기념으로 사진을 찍기로 했다.
먼저 T엄마와 M엄마 사이에 내가 가운데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T엄마가 가운데 서지 말라며 나를 살짝 밀쳤다.
"아니, 나는 사진 찍을 때, 다리도 살짝 오므리고 예쁜 척하고 신경 써서 찍는데 사진 나온 걸 보면 항상 언니가 제일 잘 나와... 언니 앞으로 가라... 내 머리가 자꾸 커 보이잖아.."
"뭐어? 하하하" 역시 웃기다... 난 구석으로 약간 앞으로 가서 찍었다.
구옥은 낡았는데 안의 시설은 현대식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조화로웠다. 과거와 현재와의 만남 같은...
국제회의를 하듯 심각한 논의 끝에, 파스타와 피자 등등을 시키고 우린 앞으로 마음대로 전화로 하기 힘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제 중학교 1학년,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우리가 전화할 때 자기들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T엄마는 T가 없을 때 나와 신나게 T의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T가 집에 들어오면 작게 얘기를 하던가 바로 끊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건 비단 T엄마뿐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이젠 사춘기 아들의 눈치를 보는 그런 때가 된 것이다.
맛나게 구워진 식전빵이 발사믹소스와 함께 나왔을 때, T엄마가 입을 열었다.
"어머나, 이 빵 너무 맛있다!" 양손에 빵을 들고 순식간에 먹으며 말했다.
"근데, 탄수화물 알레르기 있다고 하지 않았어?" 나는 장난으로 물었다.
"이건 탄수화물이 아니야. 단백질! 아님, 지방... 음.. 단백질 너무 맛있다."
역시 웃겼다!
작은 입으로 빵을 오물오물거리며 T엄마가 말했다.
"있잖아~! 내 친구가 있는데 유방암에 걸렸잖아. 근데 그 이유가 사춘기인 애들이 있는데, 하도 속을 썩여서 암에 진짜 걸렸대. 글쎄 첫 째 때문에 조사받으러 경찰서를 갔다고... "
"웬일이야! 그래서 엄마가 암에 걸려서 애들이 정신 차렸대?"
"아니! 정신 차리는 애도 있다는데 걔는 아니래."
사춘기는 정말로 무서운 거였다.
그러자, H엄마가 말했다.
"아니, 우리 H가 자꾸 이제는 거짓말을 해. 그렇게 순둥 했던 녀석이 어제 논술수업이 있었는데 수업을 제시간에 안 가고 머저리 같은 친구들하고 놀다가 공원에서 장수풍뎅이 잡았다고 신난다고 내게 사진을 보냈지 뭐야... 그러고서는 논술수업을 착실히 잘 듣고 왔다고 하더라니까... 수업 늦었다고 선생님한테 전화 왔는데...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해."
H엄마 앞에 있던 M엄마는 살짝 웃으며 대꾸했다.
"그건 이제 시작에 불과해, 언니. 사춘기에 시초 단계는 거짓말이지... 이제 더한다. 우리 애가 학교를 잘 다니고 학원도 잘 다니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그런데 갑자기 M에게 전화가 왔다.
"응.. 그럼 구몬은 다 했어?"
"어.. 다했어.."
"거짓말 아니지. 나 믿는다. 그래 그럼 끊어."
"이거 거짓말 일지도 몰라... 그냥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거야... 사춘기는 그러는 거래잖아... 아 힘들다.
그거 알아? M아빠가 M을 수신차단했잖아..."
"왜?"
"M이 하도 친구들 만나서 놀려고 돈을 달라고 해서 아빠가 수신차단해 버렸어..."
"어머나, M 상처받는 거 아니야?"
"그럴 M이 아니지, 그냥 웃어넘기던데.."
"나, 저번에 하도 속을 썩여서 M문 앞에서 '내가 죽어야 이게 끝나지!'그랬잖아. 그랬더니 남편이 지나가면서 나보고 문 앞에서 누구한테 얘기하는 거냐고 하더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빵 터졌다.
"뭐라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네.... 그런데 그걸 말로 표현하다니! 대단해! 하하하하!"
그러는 사이, 이젠 T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돈 좀 카드에 넣어주세요. 음료수가 먹고 싶은데 4,000원만요."T의 목소리는 상당히 상냥하고 기가 죽어있었다.
"근데, T야, 너 용돈 준 거 벌써 다 썼니? 화장실 청소를 하면 용돈을 받았을 텐데.. 어쩔 수 없다."
T엄마는 단호했다.
그리고 다시 T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카드에 돈이 알고 보니 있더라고요, 안 주셔도 돼요!" T의 목소리는 당돌했다...
T엄마는 돈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온도차가 확실히 다르다며 웃기다고 웃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사춘기가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방학 전, 마지막 만찬과 폭풍수다를 이렇게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