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제주도 여행에서 가위눌림

아들아... 미안!

by bony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우린 단체로 제주도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다. 아직 코로나의 여파로 단체여행을 가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엄마들은 꼭 이번에 가야겠다며 비행기티켓을 끊었다.


각자 역할을 나누어서, 군기반장과 운전은 M엄마,

식사담당은 T엄마와 Z엄마, 총무는 J엄마, 나와 H엄마는 나머지 일을 맡아서 하기로 했다.


솔직히 저질체력인 난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지쳐있었다. 처녀 때부터 여행은 피곤한 것이었다.

새벽같이 다들 일어나서 봉고차를 대여해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봉고차에 타는 순간, 난 마치 인력시장에서 일꾼으로 뽑혀서 공사장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다시 집으로 가고 싶었다.


엄마들과 가는 여행은 즐거울지 몰라도 아이들 10명과 함께 가는 이 여행은 내겐 어린이집 선생님 체험학습 같은 것이었다. 극한직업체험...


아이들은 신이 났다.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강아지 같다. 엄마들은 이것저것 애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

비행기를 어떻게 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진에어를 타고 가는 길...

기내식 따위는 없었다.

포도주스 한 잔...

난 적잖이 실망했다.

제주도는 기내식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하긴 비행기를 신혼여행으로 태국 갈 때 빼고는 타본 적이 없으니 알턱이 있나...


드디어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5월의 제주는 정말... 화창하다... 그리고 바람이..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다!

이국적인 야자수가 우릴 반겼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렌터카를 대여하러 갔다.


렌터카를 타고 숙소로 가는 중, 아들이 너무 신났는지 크게 노래를 불러댔다. 창피했다. 주의를 줄려고 했는데, H엄마가 활달해서 좋다며 그냥 두라고 했다.

아... 귀가 먹먹했다.

그 와중에 다른 렌터카를 타고 온 일행은 울음바다였다고 했다.


친구 중에 T가 H를 좋아하는데, 차 안에서 자기랑 결혼할 수 있냐고 했다는 것이다.

H는 제일 예쁘고 착한 여자친구라 남자 애들 사이에서 으뜸으로 인기가 많다.

H는 W도 되고 S도 되는데, 너는 안 된다고 선을 딱 그어 버렸다.

T가 그때부터 울면서, 그럼 결혼했다가 이혼해도 되니까 결혼해 주면 안 되겠냐고 했는데, H는 끝내 거절했다.

T는 너무 울어서 두 눈이 뻘게지고 얼굴이 온통 물범벅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통을 호소해서,

T엄마는 웃기면서도 화났는지 그만 울라고 호통을 쳤다.


숙소는 자연휴양림이었는데, 우리가 머무는 곳은 한참을 들어가야 있었다. 가는 오솔길이 좁고 을씨년스러웠다. 숙소를 들어갔는데, 역시나 통유리로 비친 나무들이 무서웠다. 왠지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낮에 아이들은 근처 바닷가에 가서 아직 여름은 아니지만 신나게 수영하고 놀았다. 난 애들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더더욱 지쳤다. 아이들은 너무 신난 나머지 너무 깊게 들어가려고 했다. 엄마들의 눈은 모두 감시카메라로 변해 위험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보았다.


점심으로 우린 바닷가가 보이는 정원이 있는 삼겹살집에 갔다. 엄마들까지 약 20명이 식당에 들어서니 식당주인은 놀라는 듯했다. 아이들은 식당을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잠시 후, 엄마들이 조용히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하나씩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혼냈다.

계산 전까지 우린 식당주인의 눈총을 받았지만, 계산할 때는 식당주인이 함박웃음을 지어 보여 주었다. 아이들이 수영 후 배가 고팠는지 엄청 먹었기 때문에 계산비가 어마어마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 H엄마가 13명의 아이들의 모래투성이 수영복을 빨았다. 옆에서 도와주었는데, 마치 인도의 불가촉천민인 도비왈라(빨래하는 사람) 체험을 하는 듯했다. 모래가 빨아도 빨아도 계속 나왔다. 그때 그 순간 모래가 사금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수영복을 모두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도비왈라 체험이 끝난 후, 밖을 나가보니 엄마들이 저녁으로 카레를 준비하고 있는지 카레냄새가 솔솔 났다.

'그래, 여긴 인도고... 나는 도비왈라야.... 빨랫감을 찢어버리고 싶은 도비왈라... 다음 생애는 황금 마스크를 쓰는 브라만이 되고 싶은...'


밤이 되자, 음악을 틀고 댄스파티를 했다. 힘들지만 젖 먹던 힘까지 내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아이들도 신이 났는지 되지도 않는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즐거워했다. 한바탕 댄스파티가 끝난 후, 아이들이 또 신나게 베개싸움을 했다. 그러다가 H가 베개 쪽 지퍼 부분에 맞아서 우는 사태가 벌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밤 12시가 되도록 들뜬 아이들이 자지 않자, 군기반장인 M엄마가 아이들을 집합시켰다.


"너희들 이러면 다시는 같이 놀러 못 오는 거야?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놀아야지? 그리고 이제 밤 12시야. 이제부터 20분만 더 놀고 씻고 자는 거야? 알았어?"

M엄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애들한테 말할 땐 애들이 내 말을 듣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 성량 자체가 틀려서 그런 것 같다. 내가 말하면 목소리가 애들 목소리에 묻히기도 하고 우선 무섭지가 않다.

M엄마의 카리스마와 무서움은 가공할 만한 위력이 있다. 역시 군기반장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20분만 더 놀아야 돼. 그냥 자면 안 될까?


잠시 뒤, 불을 모두 소등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엄마들도 피곤했는지 바로 곯아떨어졌다.

나는 거실에 통유리로 된 창가에서 잠을 잤는데, 커튼이 없어서 밖에 나무가 다 보였다. 달빛에 비친 나무는 무서웠다. 그냥 느낌이려니 하고 잠이 들었는데, 가위에 눌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여서 깨어났는데, 또 가위에 눌렸다. 연거푸 가위에 눌리면서 간신히 깨어났다.


벌떡 일어나 옆에 자고 있던 아들을 버리고,

안방으로 들어가 T엄마 옆으로 갔다.

인기척에 놀라서 깬 T엄마에게


"무서워요... 가위에 눌렸어요.. 저 여기서 자면 안 될까요? 아들도 버리고 왔어요..."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못난 엄마였다.


T엄마는 나와 자리를 바꾸어서 잤고,

다음 날 놀라운 사실은 거실에서 잔 엄마들이 모두 가위에 눌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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