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큰일나...
나에게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같이 여행도 가고 아이들 교육정보도 공유하는 엄마들의 모임이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동 모벤져스라고 부른다.
어벤저스처럼 무슨 일을 계획할 때 착착 손이 잘 맞아서...
우리는 처음에 서로의 아이들의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밤낮으로 놀이터에서 죽치고 서서 수다삼매경에 빠져 있었더랬다. 그러다가 어느 한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중재도 해주면서 그럭저럭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다. 때론 아이들이 문제를 심하게 일으킬 때가 있어, 돌아가면서 놀이터에서 갑자기 집으로 가기도 했지만 우리의 만남에 그다지 장애는 되지 않았다.
처음에 만났을 때는 30대에서 40대였지만, 세월이 흘러 흘러 우리의 연령대는 40대에서 50대가 되었다.
그리고 나만 노산인 줄 알았는데 대부분의 엄마들이 노산이었다.
난 나이로 따지면 서열 2위지만,
언니로서 그렇게 카리스마도 없고 바람 같은 존재일 뿐이다. 엄마들은 모두 배려가 넘치고 사려가 깊다. 그래서 우리가 같이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갔다 왔었어도 남편들의 우려와는 달리 여행에서 대판 싸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뿔뿔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다. 어떤 다른 엄마들의 모임이 우리 ○○동 모벤져스보다 더 끈끈할까?
여느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자마자 집 앞의 싸구려 무인커피가게에 모였다.
다들 부스스한 얼굴에 아침부터 애 등교 시키느라,
영혼이 빠져나간 채, 아무렇게나 입은 옷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왔다. 그중 한 엄마의 바지를 자세히 보니 독특한 형이상학적인 문양이 있길래 문양이 특이하다고 하니 락스자국이란다.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들이 화장실 변기에 제대로 소변을 잘 안 싸서 냄새가 지독하길래 락스로 신나게 뿌려가며 청소하다 보니 옷에 묻었다고 한다. 락스가 묻었지만 늘어날 때로 늘어난 그 락스자국이 난 바지가 편해 버리지 못하고 계속 입는다고 했다.
또 다른 엄마는 하얀 영문자가 새겨진 포카리스웨트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파란 티셔츠를 입었는데, 영문자 옆에 하얀색의 구름모양 같은 역시 형이상학적인 문양이 있었다. 특이하다고 또 얘기했더니, 치약을 묻혔다고 했다.
아...
그들의 패션의 포인트는 락스자국과 치약자국인 건가?
Z엄마는 애가 남긴 밥 먹고 왔다며...
왜 그렇게 아침을 정성스럽게 차렸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애가 아주 조금 먹고 배부르다고 남긴 것이다.
그리고 남편도 밥을 남겨서 애가 남긴 밥에 남편이 남긴 밥을 다 먹느라 배가 터지겠다고 했다. 본인이 계속 살이 찌는 이유는 다 그 때문이라고 했다.
H엄마는 첫 째가 아침잠이 많아 잘 못 일어나서 처음에는 전기 벌레잡이로 이불을 쳐서 일어나게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안 통한다고 했다.
이어서 H엄마는 우리 집 바로 맞은편으로 윗집에 사는데 나보고 혹시 어제 자신이 소리 지르는 소리를 못 들었냐고 물었다. 애들이 밤까지 숙제를 안 하고 탱자탱자 놀길래 숙제하라고 윽박을 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인의 바로 앞집사람을 아침에 오다가 마주쳤는데 어제 자신이 소리를 지른 것을 들은 것 같다며 민망하다고 했다.
나는 전혀 안 들렸다고 안심시켜주었다.
Z엄마와 H엄마가 동시에 한 숨을 푹 쉬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무인 커피 자판기 앞에서 서로가 커피 사겠다고 몸싸움을 하는데, T엄마가 나타났다. 저 멀리서 T엄마가 다가왔다. 그런데 T엄마의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다.
뒤뚱뒤뚱 잘 못 걸었다. 흡사 황제펭귄 같았다.
엄마들이 동시에 T엄마의 검은 통이 넓은 바지에 시선이 꽂혔다.
T엄마는 커피숍 앞에 작은 턱을 힘겹게 올라왔다.
그 작은 턱은 T엄마에게는 에베레스트산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바지는... 가랑이가 무릎 한 참 아래에 있어서 걷기가 힘겨운 바지였다. 또한 저 바지를 입고 뛰는 것은 나홀로 2인 3각경기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듯했다.
T엄마의 얼굴에 땀이 송굴송굴 맺혔다.
T엄마는 커피숍 문을 열며, 언제 힘들게 왔냐라는 듯 반갑게 웃으며 본인이 커피를 사겠다고 자판기로 뛰어가다가 넘어졌다...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실실 나왔다... 뒤돌아 웃었다.
다른 엄마들은 일제히 T엄마에게로 달려가 괜찮냐고 물었다. 그런데 다들 웃고 있었다.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그런 불편한 옷을 왜 입은 거야?" 한 엄마가 물었다.
"예쁘잖아? 내겐 불편함보다는 패션이 더 중요해! "
그 후, 엄마들은 점심을 먹으러 남동공단 떡볶이집으로 가기 위해 M엄마의 승합차에 올랐다. 그런데 T엄마의 움직임이 아니나 다를까 느리다. 다리를 잘 들지 못했다. T엄마는 한쪽 다리를 먼저 차 안에 간신히 넣고 나머지 다리는 직접 손으로 들어 올려서 탔다. 그 바지는 차를 타는데도 불편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선생님인 T엄마는 학교에서도 기능성이 떨어지는 나름 심미성만 강조한 논란의 바지를 입고 교장선생님 앞에서 또 넘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