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설명회에 가다...

너는 내게 좌절감을 주었어...

by bony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나의 절친인 Q가 송도에 있는 E학원 설명회에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그날 설명회는 하나는 특목고반, 또 하나는 의대반에 대한 설명회였다. 우리 엄마들 중에 T엄마는 T를 과학고에 평소 보낼 생각이 있기에 나는 T엄마한테만 넌지시 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T엄마는 두 설명회 모두 다 가고 싶다는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Q와 나는 특목고반 설명회만 듣고 싶었다. 애초에 우리 둘 다 의대를 보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설명회는 4시쯤 시작이 되었다. 나는 아이를 알아서 학원에 가라고 하고 Q와 T엄마와 설명회에 들어섰다.

설명회가 시작되자마자, 처음에는 Q와 T엄마는 열정적으로 강의를 듣는 것 마냥 필기도 해 가면서 들었다. 나 역시 열심히 들었다. 하. 지. 만...

설명회가 본격적으로 본론으로 향해 가고 있을 때쯤, Q는 포기한 듯, 학원에서 나누어 준 유인물에 끄적이던 볼펜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설명회를 들을수록 우리 아이는 선행이 좀 안되어 있었기에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에 반은 포기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가 아예 선행이 안된 것도 아니라서 Q처럼 하품은 안 나왔다. Q는 풀린 눈으로 졸고 있었다. 반면에 역시 선생님답게 T엄마는 열심히 필기를 했다.

설명회가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학원강사는 아이의 키를 생각하지 말고 늦게까지 공부시켜도 된다라는 말을 했다. 키 크는 것은 나중에도 잘 먹으면 다 큰다며... 나는 순간 그 논리에 빠져들었다.


설명회가 모두 끝나고 우린 간단히 1층에 있는 하삼동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T엄마의 재롱에 Q는 거의 반 죽음이 되도록 웃었다. Q를 30년 넘게 보아왔지만 이렇게 행복하게 배가 찢어지도록 웃는 것은 처음 보았다. T엄마는 재밌으면 만원을 내야 한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다. T엄마도 역시 Z엄마와 같이 여러 별명이 있는데, 그중에 '만원이'라는 별명 있다. 만원만 주면 웃겨준다는....

아까 전에 Q는 남 일 같은 지루한 설명회에 졸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었다.

하지만 다시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 , 아이에게 선행을 미리 많이 안 시킨 우리 자신을 원망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어찌하랴? 우린 전부 우울모드가 되었다. 그때 그 순간은 조울증환자 같은 느낌을 받았다.

웃었다가 우울했다가... 아무튼 그랬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우리 잘해보자며 으싸으싸 하고 헤어졌다.

T엄마는 레벨테스트까지 신청했지만, 우리 모두는 아이들을 그 학원에는 못 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송도에 사는 Q와 헤어지고 집으로 갈려고 막 버스를 타러 갈려고 할 때였다. 참고로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한다.

T엄마는,

"언니, 내가 차로 데려다줄게! 버스 타지마!"

"아니, 괜찮아! 여기 버스정류장이 바로 있어~!"

"뭐야! 언니 혹시 내가 운전하는 게 무서워서 그래?"

"어... 아니야.." 내 눈빛은 흔들렸다.

눈치 빠른 T엄마는

"맞구먼, 맞아... 괜찮아, 언니... 나 믿어. 가면서 얘기도 하고 그러자아~~~!!"

난 마지못해 승낙하고 학원 건물 지하주차장에 주차해 둔 T엄마의 차에 탔다.

내가 T엄마의 차를 타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우리가 단체로 아이들과 함께 서울랜드로 갔을 때, 아무도 같이 타고 싶어 하지 않는 T엄마의 차를 단독으로 탔을 때의 일 때문이었다. 당시에 우리는 길을 계속 헤매다가 서울랜드 부근에 똑같은 장소를 3번이나 돌았다. 그때의 악몽으로 인해 좀 타기 싫었다...

T엄마의 차가 주차장에서 빠져나왔을 때, T엄마는

"어머나, 나 뒤에 자전거 칠 뻔했어. 언니!"

내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러다가 우회전을 했는데,

"아이고 이런, 언니 나 지금 잘못 돈 것 같아. 역주행이야."

"괜찮아... 천천히 해봐!" 나는 생명에 위협을 느꼈다.

역주행에서 간신히 벗어나 우린 학원 앞 횡단보도를 지났다. 학원가라서 그런지 노란색의 병아리 같은 학원차가 줄을 지어 있었고 승용차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 앞에 차들이 완전히 멈춰있었다. 교통체증이 심했다.

그러는 와중에 T엄마는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면서 나랑 이야기를 하면서 운전도 했다. 등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말을 자제하려고 했는데, T엄마는 괜찮단다... 내가 안 괜찮아...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T엄마는 이따가 있을 의대반 설명회도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의대반 설명회에서는 그 학원 졸업생 중, 의대를 간 학생의 질의응답시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다. 그리고 의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T엄마도 의대에는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전국상위 1%의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안 가겠다고 끝끝내 거절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긴장한 몸을 소파에 누였을 때, 전화가 왔다. M엄마였다.

"언니, 이따가 집 앞으로 나와! 언니 낮에 E학원 특목고 설명회 갔다 왔다며? T엄마가 의대반 설명회같이 가재. 지금 H엄마도 간대. 가자, 언니!"

나는 여러 번 거절했지만, M엄마도 가기 싫지만 가는 거라면서 다 같이 가자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마지못해 이건'의리'로 가는 거라면서 저녁 늦은 시간의 설명회를 또 갔다.

T, H, M엄마 그리고 나는 이번 설명회에서 커다란 폭격탄을 맞았다. 역시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의응답을 해준 예쁘장한 의대 여학생은 얘기를 들어보니 원래 공부를 잘하는 수재였다. 남들 하루 종일 공부할 것을 하루 4시간이면 다 끝내는 괴물 같은 학생이었다.

엄마들이 나란히 앉아 설명회를 듣고 있다가 막바지가 되었을 때쯤, 옆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다들 얼굴이 내가 알던 밝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늘이 얼굴을 모두 덮고 있었고, 특히 H를 수의대로 보내려던 H엄마는 좌절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H엄마는 설명회가 끝나자마자 학원선생님께 달려가 이야기를 나누었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이 장례식 같은 분위기는 무엇인가?

모두들 아이들의 선행이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린 결국 우울함을 가득 안고 선행을 조장하는 이 교육을 비판하면서 헤어졌다... 이 일이 있은 후로 H엄마는 일주일 동안 우울해 있었고 지금은 다시 힘을 내어서 H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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