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В память о Диме(디마를 추모하며)

파도

by 해일

"앞으로는 일상 말고도 이것저것 써봐야지."


최근 작성한 네이버 일상 포스팅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이런 글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내 친구 드미트리(Дмитрий), 디마가 쿠르스크 지역에서 전사했다.




비통해하며 소식을 전하던 다른 친구에게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디마는 처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작년 하반기에 자원입대했다.

살아서 돌아오기를 바랐던 대화가 아직 남아있는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곳 한국까지 쫓아온 듯하다.

러우 전쟁으로 친구를 잃었다.


전쟁은 무조건 비극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실감한다.

누가 잘했네, 못했네 하는 중에도 유일한 영혼을 저마다 품고 있던 몸들이 식어간다.

디마는 쓰러져 간 많은 드미트리들 중 하나일 뿐이겠지만 단 하나이기도 하다.




처음 만났던 것은 스물 초반, 어렸던 디마가 갓 제대한 날이었다.


여럿이 어울려 펑크 밴드 FPG 공연장에서 놀았고,

그해 여름 록페스티벌 <доброфест>에서 얼굴에 낙서를 한 채 잔디를 뛰어다녔다.

그는 군대에서 먹던 거라며 크래커에 통조림 고기를 발라 건네주기도 했다.

(지난 겨울 내내 그런 것들을 먹으면서 전장에 있었을 것이다.)


공원에서 종종 샤슬릭을 구워 먹었고,

생일 파티를 하와이안 컨셉으로 하겠다면서 유일한 외국인 친구인 나를 바냐에 초대했고,

그의 결혼 축하로 복분자주를 선물하며 남자한테 좋은 거라고 설명하자 "난 필요 없는데."라며 씨익 웃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두 아이를 거느린 완전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https://blog.naver.com/rmc_ovo/222546341989




이것은 현지에서 떠나있는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나름의 추모 방식이며,

전쟁에서 착한 편과 나쁜 편을 가르는 것은 죽음 앞에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기록해두고 싶다.


오늘 한국에 눈이 많이 내렸다.

그곳은 더 추웠을 텐데, 부디 편하게 눈을 감았길 바란다.

수고했고,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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