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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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봄축제 마슬레니짜 내내 먹게 되는 블린니(단수: 블린)는 평소에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정확히 계량이 필요한 레시피가 필요 없다는 점도 달리 말하면 그만큼 편하게 접근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무심하게 생긴 반죽 구이치고는 나름 관련된 속담도 있고 굉장한 다양성을 띠기도 한다.
게다가 제목의 ‘블린(блин)’은 두 가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데, 그 부분은 맨 끝에 남겨두려 한다.
블린니의 모든 것! 은 아니지만 레시피를 포함해 이것저것 풀어본다.
Первый блин - комом.
쉽게 말해 ‘첫 판은 망한다.’
팬을 달군 후 처음 올린 반죽은 덩어리 지고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푹 퍼진 채로 굳어버린 슬라임 꼴로.
이 속담은 첫 시도에 실패해도 좌절하지 말라는 격려를 담고 있다.
속담답게 현실 고증도 제대로 들어가 있다.
몇 번을 구워도 첫 블린은 늘 말 그대로 엉망으로 나왔었다.
온갖 재료들을 발라먹고 찍어먹고 싸 먹는 블린니.
몇 가지 널리 통용되는 조리예는 있지만 곁들이는 재료는 정말정말 먹는 사람 마음대로다.
그래서 무슨 재료를 같이 먹느냐에 따라 어디서 왔는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아침식사 시간, 룸메이트 D와 S는 전날 마트에서 산 기본 블린니를 꺼내 차렸다.
둘은 자연스럽게 차를 끓이고, 블린니와 같이 먹을 것을 꺼내 식사하기 시작했다.
카프카스 지역 다게스탄에서 온 D는 스메따나(сметана, 사워크림)를,
우랄 지역 바시키리아에서 온 S는 꿀을 꺼내 펴 바르고 있었다.
두 지역은 각각 유제품 소비가 높고 꿀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둘은 이것을 처음으로 깨닫고 웃었다.
또 태국 친구들은 바나나와 연유를(로띠),
중국 친구들은 중화풍 소스와 옥수수를(딴삥) 넣어서 블린니를 만들어주곤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김치볶음과 불고기를 넣어서 먹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꽤 맛있을 것 같다.
사실 늘 계량을 하지 않는 현실 레시피를 이용해 왔다.
우유나 계란은 실온상태여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턱턱 섞어서 만드는 것이 속이 편하다.
그러나 혹여라도 블린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첫 시도에 대책 없이 막 섞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래에 조회수 2,200만 회짜리 레시피도 기록해두려 한다.
1) 현실 레시피
ㅁ 재료(5가지): 밀가루, 우유(밀가루의 2배 정도), 달걀(넣고 반죽에 섞으면 적당히 옅은 버터색이 날 정도), 그리고 간혹 생략하는 기름(쪼르르), 설탕(단 거 좋아하는 만큼).
ㅁ 약간의 소금을 추가해도 좋으나, 자주 까먹어버린다.
* 달걀에 설탕, 그리고 우유를 달걀만큼만 넣고 잘 섞어준다.
* 밀가루를 넣고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충분히 잘 섞어준다(아직 뻑뻑하다).
* 나머지 우유를 조금씩 부으면서 최종적으로 묽은 반죽이 되도록 잘 섞어준다.
* 반죽이 팬에 들러붙지 않도록 기름 약간을 넣어준다,
* 코팅 잘 된 팬에 기름 약간(중요)을 둘러 달군 후, 반죽 한 국자를 떠 넣고 팬을 돌려 얇게 잘 펴준다.
* 표면이 마르기 시작하면 뒤집는다.
* 황금색이 나도록 구운 뒤, 구운 블린니를 쌓는다.
* 기호에 맞는 재료를 얹어 먹는다.
2) 유튜브 레시피(조회수 2,200만, 개인 친분 전혀 없음)
ㅁ 재료: 따뜻한 우유 500ml, 큰 달걀 3개, 설탕 3숟가락, 소금 1/4 티스푼, 소다 1/4 티스푼, 밀가루 200-220g, 식용유 2-3숟가락
* 달걀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잘 푼다.
* 우유 100ml 정도, 밀가루와 소다를 넣고 덩어리가 없을 때까지 젓는다.
* 나머지 우유를 여러 번 나눠 넣으면서 섞고 식용유를 추가하여 또 젓는다.
* 굽는 방법은 위와 동일
* 참고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_cohB81wL8
잘 섞는 것부터 중요하다.
한번 제대로 멍울진 블린니를 먹었던 자로서 충분히 조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반죽 방울 안에 갇혀있던 밀가루 뭉치가 입 안에서 터져나가는 건 썩 유쾌한 맛이 아니었다.
그 뒤로는 뻑뻑한 반죽에 우유를 부어 슬슬 풀어나가는 방법을 잘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 프로틴을 갤 때도 같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 마트, 카페, 식당 여기저기에서 온갖 재료를 넣은 블린니를 판매한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꼽기 힘들 정도로 파는 곳이 정말 많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레알 반죽구이도 흔히 팔아서 얼마든지 원하는 재료와 편히 커스텀만 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Теремок(쩨레목)이 떠오른다.
매장도 있고 푸드코트에도 흔히 입점해 있는데, 직접 블린니를 굽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자주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최근에는 두바이초콜릿 블린니도 출시했다.
많이 먹었던 메뉴는 Цезар로, 시저샐러드에 들어갈 법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닭가슴살, 양상추, 토마토소스가 들어가 건강식일 것 같지만 마요네즈와 치즈가 추가 투입되어 750칼로리를 자랑한다.
1) 가장 자주 먹은 조합
: 연유, 뜨바록(코티지치즈)+딸기잼, 쩨자르(시저샐러드)
2) 가장 알뜰했던 조합
: 새해 음식인 냉털 올리비예(감자, 당근, 햄, 피클, 달걀, 마요네즈 등을 버무림)를 소진
3) 가장 신기했던 조합
: 절인 연어, 연어알. 달달짭짤비릿한 맛이 신기했다.
4) 가장 최근 먹었던 조합
: 스메따나(대신 그릭요거트)+우끄롭(딜), 닭고기버섯볶음
1) 지금까지 소개했던 러시아식 부침개.
2) 비교적 가벼운 비속어.
두 번째 같은 경우는 정말 가벼운 비속어로, ‘젠장’ 또는 ‘제길’ 정도의 포지션이다. 놀라움이나 긍정적으로 탄식하거나 감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블린, 뭐 이런 걸 다 준비했어?' 라든가 '블린, 걔가 여자였다고?' 처럼.
참고로 정말 화나거나 당황했을 경우 ‘블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말들이 우다다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글제목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을 러시아어로 적으면 'Блин! Это вкусно!' 가 된다.
위에서 소개했던 식당의 홍보문구이다.
정답은 아래와 같다.
1) 블린(음식)이 맛있네!
2) 왐마야, 맛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