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블린(блин), 맛있네!

구소련 묵시록

by 해일


https://brunch.co.kr/@90b13df5c66e4c8/9

러시아 봄축제 마슬레니짜 내내 먹게 되는 블린니(단수: 블린)는 평소에도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정확히 계량이 필요한 레시피가 필요 없다는 점도 달리 말하면 그만큼 편하게 접근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maxresdefault.jpg

무심하게 생긴 반죽 구이치고는 나름 관련된 속담도 있고 굉장한 다양성을 띠기도 한다.

게다가 제목의 ‘블린(блин)’은 두 가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데, 그 부분은 맨 끝에 남겨두려 한다.

블린니의 모든 것! 은 아니지만 레시피를 포함해 이것저것 풀어본다.




1. 속담


Первый блин - комом.

img_5c306d5fa3275.jpg

쉽게 말해 ‘첫 판은 망한다.’

팬을 달군 후 처음 올린 반죽은 덩어리 지고 엉망진창이 된다는 것이다.

마치 푹 퍼진 채로 굳어버린 슬라임 꼴로.


이 속담은 첫 시도에 실패해도 좌절하지 말라는 격려를 담고 있다.

속담답게 현실 고증도 제대로 들어가 있다.

몇 번을 구워도 첫 블린은 늘 말 그대로 엉망으로 나왔었다.




2. 블린니로 추측해 보는 출신 지역


온갖 재료들을 발라먹고 찍어먹고 싸 먹는 블린니.

몇 가지 널리 통용되는 조리예는 있지만 곁들이는 재료는 정말정말 먹는 사람 마음대로다.

그래서 무슨 재료를 같이 먹느냐에 따라 어디서 왔는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28469644880_e31ff1b9bf_b.jpg 한식으로 치면 구절판이 아마 비슷한 음식일 것 같은데, 그래도 기본 재료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아침식사 시간, 룸메이트 D와 S는 전날 마트에서 산 기본 블린니를 꺼내 차렸다.

둘은 자연스럽게 차를 끓이고, 블린니와 같이 먹을 것을 꺼내 식사하기 시작했다.

i?id=a41ec2553b01e1137fbc62c27d3061a4_l-5194964-images-thumbs&n=13

카프카스 지역 다게스탄에서 온 D는 스메따나(сметана, 사워크림)를,

우랄 지역 바시키리아에서 온 S는 꿀을 꺼내 펴 바르고 있었다.

두 지역은 각각 유제품 소비가 높고 꿀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둘은 이것을 처음으로 깨닫고 웃었다.


또 태국 친구들은 바나나와 연유를(로띠),

중국 친구들은 중화풍 소스와 옥수수를(딴삥) 넣어서 블린니를 만들어주곤 했었다.

그렇다고 내가 김치볶음과 불고기를 넣어서 먹지는 않았지만, 그것도 꽤 맛있을 것 같다.




3. 레시피


사실 늘 계량을 하지 않는 현실 레시피를 이용해 왔다.

우유나 계란은 실온상태여야 한다거나 그런 것들은 고려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 턱턱 섞어서 만드는 것이 속이 편하다.

그러나 혹여라도 블린니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면, 첫 시도에 대책 없이 막 섞으라고 할 수는 없으니 아래에 조회수 2,200만 회짜리 레시피도 기록해두려 한다.


1) 현실 레시피

ㅁ 재료(5가지): 밀가루, 우유(밀가루의 2배 정도), 달걀(넣고 반죽에 섞으면 적당히 옅은 버터색이 날 정도), 그리고 간혹 생략하는 기름(쪼르르), 설탕(단 거 좋아하는 만큼).

ㅁ 약간의 소금을 추가해도 좋으나, 자주 까먹어버린다.

* 달걀에 설탕, 그리고 우유를 달걀만큼만 넣고 잘 섞어준다.

* 밀가루를 넣고 덩어리가 지지 않도록 충분히 잘 섞어준다(아직 뻑뻑하다).

* 나머지 우유를 조금씩 부으면서 최종적으로 묽은 반죽이 되도록 잘 섞어준다.

* 반죽이 팬에 들러붙지 않도록 기름 약간을 넣어준다,

* 코팅 잘 된 팬에 기름 약간(중요)을 둘러 달군 후, 반죽 한 국자를 떠 넣고 팬을 돌려 얇게 잘 펴준다.

* 표면이 마르기 시작하면 뒤집는다.

* 황금색이 나도록 구운 뒤, 구운 블린니를 쌓는다.

* 기호에 맞는 재료를 얹어 먹는다.


2) 유튜브 레시피(조회수 2,200만, 개인 친분 전혀 없음)

ㅁ 재료: 따뜻한 우유 500ml, 큰 달걀 3개, 설탕 3숟가락, 소금 1/4 티스푼, 소다 1/4 티스푼, 밀가루 200-220g, 식용유 2-3숟가락

* 달걀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잘 푼다.

* 우유 100ml 정도, 밀가루와 소다를 넣고 덩어리가 없을 때까지 젓는다.

* 나머지 우유를 여러 번 나눠 넣으면서 섞고 식용유를 추가하여 또 젓는다.

* 굽는 방법은 위와 동일

* 참고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E_cohB81wL8


잘 섞는 것부터 중요하다.

한번 제대로 멍울진 블린니를 먹었던 자로서 충분히 조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반죽 방울 안에 갇혀있던 밀가루 뭉치가 입 안에서 터져나가는 건 썩 유쾌한 맛이 아니었다.

그 뒤로는 뻑뻑한 반죽에 우유를 부어 슬슬 풀어나가는 방법을 잘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요즘 프로틴을 갤 때도 같은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




4. 만들기 싫다면 쿨하게 사먹으면 되죠.


러시아 마트, 카페, 식당 여기저기에서 온갖 재료를 넣은 블린니를 판매한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꼽기 힘들 정도로 파는 곳이 정말 많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레알 반죽구이도 흔히 팔아서 얼마든지 원하는 재료와 편히 커스텀만 해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Теремок(쩨레목)이 떠오른다.

https://teremok.ru/

스크린샷 2025-03-14 오후 6.12.45.png

매장도 있고 푸드코트에도 흔히 입점해 있는데, 직접 블린니를 굽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런 듯하다.

자주 다양한 시도를 하는데, 최근에는 두바이초콜릿 블린니도 출시했다.


많이 먹었던 메뉴는 Цезар로, 시저샐러드에 들어갈 법한 재료들이 들어간다.

IMG_5631.jpg

닭가슴살, 양상추, 토마토소스가 들어가 건강식일 것 같지만 마요네즈와 치즈가 추가 투입되어 750칼로리를 자랑한다.



5. 개인적인 블린니 어워즈(Awards)


1) 가장 자주 먹은 조합

: 연유, 뜨바록(코티지치즈)+딸기잼, 쩨자르(시저샐러드)


2) 가장 알뜰했던 조합

: 새해 음식인 냉털 올리비예(감자, 당근, 햄, 피클, 달걀, 마요네즈 등을 버무림)를 소진


3) 가장 신기했던 조합

: 절인 연어, 연어알. 달달짭짤비릿한 맛이 신기했다.


4) 가장 최근 먹었던 조합

: 스메따나(대신 그릭요거트)+우끄롭(딜), 닭고기버섯볶음




6. 마지막: 블린(блин)의 두 가지 의미


1) 지금까지 소개했던 러시아식 부침개.

2) 비교적 가벼운 비속어.


두 번째 같은 경우는 정말 가벼운 비속어로, ‘젠장’ 또는 ‘제길’ 정도의 포지션이다. 놀라움이나 긍정적으로 탄식하거나 감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블린, 뭐 이런 걸 다 준비했어?' 라든가 '블린, 걔가 여자였다고?' 처럼.

참고로 정말 화나거나 당황했을 경우 ‘블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말들이 우다다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글제목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제목을 러시아어로 적으면 'Блин! Это вкусно!' 가 된다.

스크린샷 2025-03-14 오후 6.12.45.png

위에서 소개했던 식당의 홍보문구이다.

정답은 아래와 같다.

1) 블린(음식)이 맛있네!

2) 왐마야, 맛있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슬레니짜(Масленица), 러시아 봄맞이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