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ХВ! 부활절 뒷북

구소련 묵시록

by 해일


부활절이 지난 지 딱 일주일이다.

마지막 부활절 달걀은 그저께 떡볶이에 넣어서 다 먹은 참이다.

지금이 아니면 내년에나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쓰는 부활절 게시글




paskha-ikona-kulich-svecha-iaitsa.jpg?type=w773


러시아에서 부활절은 Пасха(빠스하)라고 한다.

그리스어(Πάσχα), 라틴어(Pascha)와 유사하다.

* 영어(Easter/The Resurrection Day)와 독일어(Ostern) 정도를 제외하면 다른 서방 국가에서도 비슷한 발음인데, 아래의 파인애플짤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겠다.

SE-6b950228-7520-44a6-92de-7cd3e21942fd.jpg?type=w773 당당히 혼자 '파인애플'의 길을 가는 잉글리쉬


아래는 부활절 인사와 답변이다.

- Христос Воскресе! (흐리스또스 바스끄례씨) :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

- Воистину Воскресе! (바이스찌누 바스끄례씨) : 진정으로 부활하셨다!

* 첫 번째 인사를 줄인 'ХВ'가 이곳저곳에서 보인다면 부활절 맞다.


영어권과도 비슷한 인사다.

- Christ is risen!

- He is risen indeed!

"Happy Easter"처럼 "С Пасхой(쓰 빠스호이)"라고 인사하기도 한다.




영어권, 특히 미국처럼 본격적으로 달걀 찾기 게임 같은 것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트에 가면 확실히 부활절이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s://arbuztoday.ru/kak-v-astraxani-gotovyatsya-k-pasxe-obzor-cen-v-magazinax/

마슬레니짜 블린니 재료가 쌓여있던 진열대에는 달걀 꾸미기 키트(물감, 스티커, 금박까지 완전 화려함), 꿀리치(Кулич)라는 부활절 케이크 완제품, 관련 베이킹 재료들이 자리한다.


paskha-kulich-tvorozhnyi-tsarskii-dekor.jpg?type=w773 Христос Воскресе를 줄인 ХВ

뜨바록(творог, 코티지 치즈)으로 반죽해 빚은 저 물체(творожные пасхи)는 먹어본 적 없지만,

왠지 안 구운 자삐깐까(запеканка)*맛이 날 것 같다.

* 일종의 치즈케이크


IMG_6600.JPG
IMG_6601.jpg
왼쪽은 왠지 전형적인 느낌을 주는 꿀리치(кулич), 오른쪽은 그냥 사 먹었던 사진이 있길래...

요즘은 부활절 케이크가 여러 형태로 멋지게 변형*되고 있는데,

그래도 왠지 스프링클 장식을 얹은 커다란 덩어리가 가장 먼저 연상된다.

* 부활절 크루핀, 머핀 같은 깜찍한 레시피들이 돌아다닌다.

맛은 스폰지와 파운드케이크 사이 어딘가이며 보통 말린 과일이 들어간다.




러시아 정교는 율리우스력을 기준으로 부활절 날짜를 정하므로 우리나라 개신교, 천주교와 날짜가 다를 수 있다.

계산 방법이 어떻게 되냐면, 그냥 편하게 '올해 부활절 날짜' 정도로 구글링하면 된다.

* 올해는 4월 20일로 같았다. 내년은 또 다름.


정교 신도가 아니므로 실제 어떨지는 모르나, 성당 이곳저곳이 예배로 바쁠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다.

그러다 이런 부활절 미사 영상들을 보게 되었다.

* 첫 번째는 키프러스(사이프러스) 파라림니(Paralimni)의 어느 성당, 두 번째는 댓글에 'Храм Боголюбской иконы Божией Матери'라는 모스크바 외곽 성당 이름이 나오긴 했는데 확실하지 않다.


https://youtu.be/1_k0i9gLJLs?si=wtrTJKThmMDeIC3Y


https://youtu.be/Xw-1fH0YfOI?si=dmkNwbYcEaPhNjAP


헐 저게 뭐야, 하다가 느낌표가 떴다.

부활절은 말 그대로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다.

무려 죽었다 살아난 사건이 발생한 건데 엄숙한 태도보다는 이성을 잃은 듯 기뻐 날뛰는 게 더 말이 된다.


교회에서 체육대회 같은 것을 한다면 부활절 런(Run)을 종목으로 넣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떻게 부활의 기쁨을 보여줄 건지 보는 거임.

꽃가루 뿌리면서 빠르게 달리기, 기쁨의 외침을 데시벨로 측정하기 같은 걸로.

* 위에 첨부한 영상에는 마귀 씌었냐는 악플도 꽤 많았는데, 그분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사탄이 활개친다고 댓글 달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최대한 많은 이들이 기쁜 하루를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푸틴이 약 1.25일간의 휴전 선포를 날린 것은 뜬금없었다.

긴장감 꽤나 쫀득한 휴전


https://lenta.ru/brief/2025/04/19/priostanovka/


휴전 뉴스에 이어 이탈리아 해노자인 브로는 현지 특보로 교황 선종 소식을 알렸다.

(사실 꽤나 발랄하게 부활절 달걀 떡볶이와 인사말로 열었던 글이 축 처져가는 것을 보며 실시간으로 당황하고 있다)


내년 부활절 즈음에는 올해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있길 바라며,

힘든 순간이 온다면 케이크 한 입 베어물고 부활로 비롯된 기쁨을 기억하며 극복하기를!

(급수습하는 거 맞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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