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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카인디-콜사이에서 극대노한 사연

귀여운 부한까(푸르공)

by 해일


고요한 분노로 점철된 투어길이었다.


- 8,000텡게짜리 말을 타고 가든 승합차 타고 가든 알아서 하시고, 이따 오후 4시에 돌아오겠슈!


저 8,000텡게도 필시 왕바가지일터.

환경비용 3,000텡게를 지불한 후 메이람의 통보를 받고 중간지점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바로 앞에 주차된 부한카 서너대 주변에 관광객들이 사탕에 달려드는 개미들처럼 서있었다.




[잠시 소소하게 부한카(Буханка) 덕질 타임♡]

* УАЗ-452. 우리나라에서는 푸르공(Пургон)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것 같다.


SE-0b33d1e8-6973-4900-87e3-7db9e327841e.jpg?type=w1 구글 무료 이미지

글 분위기가 급반전되었는데 왜냐하면 부한카는 굉장히 기특하고 귀여운 녀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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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 큩

색도 생김새도 너무 취향이다.

채도 낮은 아이스 블루컬러에 앞코도 동그랗고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생긴 차라니.

* 색은 다양하다.


5412536s-960.jpg?type=w1 https://www.drive2.ru/b/3140230/

실제로 모델명보다는 별명인 '빵덩어리(буханка)'로 통하고 있다.

아예 차를 빵으로 덮어버린 영상도 있음(28:00쯤부터 완성작 등장)


동글납작 귀여운 외관과 달리 성능이 상당하다.

일단 지상고가 높은 것부터 보면 어떤 용도로 만든 차량인지 짐작 가능하다.

IMG_9587.JPG?type=w1 굉장히 중앙아시아스러운 장면 포착 성공

열심히 어푸어푸 물을 건너가는 우리 한까

경사가 극단적인 비탈길도 으쌰으쌰 올라간다.

룸메는 '소련이 이래서 전쟁에서 이겼나보구나!' 하고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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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수동 변속이다.

자동이 편리하지만 '내가 직접 이 차를 제어한다'는데서 오는 손맛은 역시 수동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역시 부한카에 자동 변속기가 달려있으면 부자연스러울 것 같다.

부자 세력이 있는 공산주의 국가처럼


내부도 무심하고 네모지기 짝이 없다.

관광객들을 위로 아래로 실어나르느라 손잡이가 될 튼튼한 끈을 천장 곳곳에 달아놨다.


입양만 되면 잔뜩 예뻐할 자신이 있다.




사람이 어느정도 차자 빵덩어리는 지체없이 출발했다.

역시나 사방으로 둠칫대는 엄청난 경사로였는데 중간에 시동 한 번 꺼뜨린 것 빼고는 힘좋게 쑥쑥 올라갔다.

그와중에 빨간색 이스탄불 반팔티와 군복바지 입고 역방향으로 앉아 태연하게 살구를 까먹고 계시던 흰수염 아저씨가 생각난다.

살구가 간단히 손에서 떠날 수도 있을 정도로 심한 흔들림 가운데서도 너무 맛있게 드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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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카인디 영역 두번째 도착지.

호수쪽으로 연결된 길 초입에서 불쑥 등장한 꼬마 하나가 영어로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룸메가 한국이라고 대답하자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Wow!' 하고 떠났다.

'Korea'가 그리 놀라운 대답은 아닐테고 그냥 배운 영어 한번 써보고 싶은 친구였던 것 같다.


호수로 가려면 10분 정도 비포장 내리막길을 걸어야 한다.

지금 내려간다는 것은 나중에 올라와야한다는 것을 뜻한다.

과연 중간중간 벤치가 마련돼있었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잠시 쉬는 이들도 볼 수 있었다.

쉬면서 'Where are you from?'으로 시작하는 스몰토크도 걸어왔다.

곧 다가올 미래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머지않아 영상과 사진으로 보던 장면을 마주했다.

IMG_8380.jpg?type=w773 더 잘 찍은 사진이 온 세계에 널렸을테지만 일단 왔으니까 찍는다는 생각으로...저쪽 뒤에 물이 유입되는 길이 있었다.


한참 서서 멍때렸다.

카작어로 카인디(қайыңды)에는 '자작나무~'라는 뜻이 있다.


1911년 지진으로 수몰된 나무들인데 물 속 잎들이 아직 건재해보인다.

저 나무들도 언젠가 쓰러질 것이므로 언제까지고 저 풍경이 남아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 지역 관광업계는 부르는 대로 돈을 벌어들일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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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전통옷 입고 독수리와 함께 사진을☆ 같은 부스가 있고 오리 한 마리가 나무 작대기 위에 앉아 힐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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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보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자리를 조금 왼쪽으로 옮겨갔다.

드레스업하고 와서 몸을 비비 꼬며 아련한 시선으로 입술 뚱 내밀고 사진찍는 아가씨들이 있었다.

확실히 이쪽이 포토존인 것 같다.


차를 타러 걸어서 다시 올라오는 길은 예상대로 편한 길이 아니었다.

복귀길 부한카에는 어린이들이 서넛 동행했다.

방금 간식을 먹었는지, 진한 우유와 요거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 명이 영어로 'Hello!'하고 인사하곤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엉덩이가 통통 튀어오를 정도로 흔들리는 차에 안전벨트도 없이 이제 두 돌 겨우 넘은 듯한 베이비를 안고 타는 게 다소 위험해보이긴 했지만 그 어머님은 신컨이셨다.


SE-272b611f-a3cb-408e-9e37-0eeac3b2283e.jpg?type=w773 어딜가나 마주치는 소


중간에 차를 갈아탄 지점으로 내려오자 보바씨가 메이람과 기다리고 있었다.

올라왔던 때처럼 힘을 덜 받기 위해서인지 지그재그로 홱홱 스티어링휠을 꺾으며 내려갔다.

걷지 않고도 만보기 수치가 치솟는 흔들림이다.




다시 보바씨의 차로 옮겨타고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다.


- 메이람이 호수 근처까지는 안내 안 해줬어요. 중간에 갈아타라던데요.

- 헐 그래요? 아이고 내가 얘기 했는데....

- 그 사람하고 오랫동안 같이 일했어요?

- 아뇨, 오늘이 두 번째에요.

- 전 오늘 처음 봤지만 계속 같이 일하기에는 별로 좋은 사람같지 않아요.


아주 잠시지만 메이람과의 결착 관계에 대해 의심했다.

그러나 보바씨는 이리저리 정말 신경을 많이 써주셨던데다가 추천인도 확실했으므로, 행여 정말로 속더라도 이런 마음은 내려놓기로 했다.


한편 보바씨는 카자흐스탄이 모든 것에 비용을 매기고 있다며 한탄하셨다.

관광지 입구로 들어갈 때마다 지불하는 환경비라든가 깨끗하지도 않은 화장실 이용료처럼.


- 조만간 숨만 쉬어도 돈 내라고 할 걸요. 아니 심지어 물이 기름보다 더 비싸다니까요! 1리터 주유비가 250텡게인데 물은 400텡게라니, 정신나갔어요.


하긴 아리수같은 수질이 아니므로 대안도 없을 것이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는 콜사이 호수로 향하면서 진득하게 현실을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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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이 호수로 진입 중


IMG_8416.jpg?type=w773 고속 주행 중

가는 길에 아블레삐하(облепиха)* 나무가 많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관찰했다.

사진 왼쪽편에 연어알처럼 매달려있는 열매들로 추정되었다.

* 찾아보니 비타민나무열매라고 한다. 열매 자체는 쓰고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여기저기서 차로 많이 접한다.


콜사이 호수를 둘러싼 산 중턱에는 완전 비싼 호텔이 있다고 한다.

반년치 예약이 늘 차있으며, 픽업 차량 외에는 외부차 진입도 안된다.

보바씨가 가리킨 곳 위치로 미루어보아 아래 호텔인 것 같다.


콜사이 호수는 생각보다 더더더더 관광지였다.

차가 빠글빠글한 주차장 옆 휴게소는 닭꼬지, 핫도그, 도나스, 알감자 파는 모양으로 음식 장사하는 곳도 있었다.



호숫가와 좀더 가까운 숙소로 내려가는 내리막길은 외부차량 진입이 금지돼있다.

숙소에 아까부터 연락을 계속 시도했었는데 겨우 연결돼서 픽업차량을 부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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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숙소 별관인 식당 앞에서 콜사이 호수 전경.

날이 흐린 탓인지 사진발이 최악이다.

* 한여름 중의 한여름이라 만년설이 없다시피한 것.


풍경 자체만 기준으로 두고 콜사이 제1호수와 카인디 호수 둘 중 [굳이]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다.

다른 곳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림임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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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가 보일 것처럼 광고하던 파노라마뷰 호실은 산록우유st 산뷰였다.

이런 곳까지 와서 디지털 TV 같은 걸 요구하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와이파이는 식당 외 작동하지 않음.

숙소 리뷰는 따로 할 듯한데 이미 거의 다 쓴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날씨는 다음날까지도 내내 흐림의 흐림에 비까지 예보되어 있었다.

하늘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면 음파 때문에 즉시 응결돼서 쏟아져내릴 것 같았음.

우리는 호수로 뜨는 별을 보기 위해 일부러 여길 예약한 가엾은 관광객들이다.

상심한 룸메의 곱슬머리가 추우욱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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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타러 가는 길. 오른쪽 안내문에는 러시아어 발음이 반영되어 'visitors'가 아닌 'vizitors'라고 적혀있다.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지만 고객님들의 액티비티 리스트에 오른 페달 보트를 타러 내려갔다.

가는 길에 '로끼! 롯끼!'라는 호객 소리가 들린다면 그게 보트(лодки, 롯끼-복수형)다.

페달보트 60분 이용 기준 금액은 1대당 10,000텡게(카드 결제 가능)

머슴 하나 거느려야 탈 것 같은 노젓는 배도 있다.

* 노 젓는 배는 천장이 없고 페달 보트는 천장이 있다. 쨍하게 맑은 여름 하늘을 바라보며 배 위에 보노보노처럼 누워있는 장면을 생각했으나, 보시다시피 날씨가 저 지경이라 천장이 있는 편이 나았다.


선착장 쪽 직원 지시에 따라 전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왔는데 그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저-기 있는 다른 직원한테 다가가보니 다시 되돌아가라고 한다.

돌아가도 여전히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어느쪽에서 누구를 붙잡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메이람, 날씨, 숙소를 비롯한 숱한 요소들이 하루종일 나와의 뜨뜻한 갈등을 원하고 있다.

* 혼자였다면 그리 문제 삼지 않을 것들이지만 이번에는 모셔온 고객님들이 있다. 게다가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번갈아 쓰며 상황 및 요구사항에 대한 설명도 계속해야하기 때문에 피로감이 상당하다. 동시통역의 영역이 어떤 것인지 간접체험했다. 이것이 제로의 영역인가


여름날 밖에 내어둔 콜라캔처럼 차차 열을 받고 있던 차에 지금 이 상황이 그 캔을 뽁 따버렸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내 날선 말이 나왔다.


- 도대체, 정확히, 어디로, 누구한테 가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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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화, 그로기 반반 상태로 멍하게 페달을 밟았다.

호수가 멋있고 나발이고 이 이상의 에너지 소모는 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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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옹- 통- 투우웅 - 투옹----

페달과 물이 마찰하는 소리를 들으며 오리 시키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조용히 구경했다.

내가 만든 물결이 오리들 뱃살을 열심히 쭈물대고 있다고 생각하니 훨씬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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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맞은편 끝까지 갔다.

오른쪽 사진 저너머는 콜사이 제2호수로 가는 길이다.

왼쪽 사진은 바닥이 너무도 맑게 다 보이길래 하나 찍은 건데 날씨가 몹시 흐리다는 것만 재확인한 사진이 되었다.


참고로 보트 탑승 시간은 칼같이 재지 않았다.

붐비지 않는 선착장에서 배도 제대로 못 태우는데 시간 체크까지 가능할 리가 없다.

그리고 1시간짜리로 대여하면 충분하다.




배에서 내려오니 오후 7시다.

저녁은 다른 선택지가 딱히 없어서 숙소 별관 식당으로 갔다.

엄청난 관광지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훌륭하다.

역시 반전이 아니어도 될 것이 반전처럼 다가오는 것도 핫플레이스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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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티(만두), 스테이크, 살랸카(야채참치맛 스프), 닭채소볶음, 타슈켄트차(잎차 블렌딩한 달달한 레몬티) 주문했다.

* 마르게리타 피자도 주문했는데 누락되어서 그냥 취소


말고기 스테이크를 권유했던 테이블 담당 종업원은 매우 싹싹하고 친절했다.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반가워하길래 이런저런 얘기를 해봤다.

그는 최근 한번 노동비자를 받아 인천공항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나 공항에서 바로 돌려보내서 입국을 못했다는데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다시 비자 발급에 도전해서 나중에는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같은 의지를 가진 다른 종업원 친구까지 와서 잠시 상담테이블처럼 됐다.

일단 외국인 노동자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룸메가 메신저 연락처를 줬다.




[하루가 정말 길었다]


어두워지면서 봄가을용 바람막이가 적당한 기온이 되었다.

* 영상 17도 정도. 텍사스의 기운을 한껏 받으며 살다 온 룸메는 추워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정리하는데 역시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날씨앱에서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을 들여다보는 것도 하루종일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산이니까 날씨가 변화무쌍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희망때문이다.

일단 야외 바베큐 취소는 옳은 선택이었다.


숙소 건물 전체에 걸쳐 둘러놓은 알전구에 불이 들어왔다(사진이 왜 없는지 이해할 수 없음).

마치 오징어잡이배 갑판 같고 빗소리도 운치있다.

테라스에 모여서 복숭아, 살구, 체칠 치즈, 해바라기씨앗 두고 간단히 주스(酒s) 한잔씩 했다.

* 마트에서 원하는 물품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 알마티에서 미리 쇼핑한 것을 보냉백에 담아왔다.


카인디 호수 가는 길에 눈탱이 맞은 이야기, 콜사이 호수의 감상, 내일 갈 곳 브리핑, 과거의 웅장한 썰들을 풀다보니 밤이 깊었다.

방으로 돌아왔다.

와이파이가 되지 않아 꽤 애를 먹었지만 도중에 깨알같이 수학 과외 학생이 원격으로 풀이요청한 문제도 해결해줬다.


잠시 맑아진다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볼지 진지하게 고민도 했으나 벌써 새벽 1시다.

소백산 천문대나 가지 뭐, 하고 드러누우면서 정말로 하루를 마감했다.


하루가 정말 길다고 생각했는데 다음날이 더 길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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