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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노동자 회고록 3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by 해일

뜯고 씹고 분해해서 삼켜봐도 스스로 왜 저럴까 싶은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인 한 가지로 목적지까지 방향도 모르면서 낯선 곳에서 발 닿는 대로 직진하다 쉽사리 길을 잃는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진로나 성격 관련 주제를 ‘목적지’나 ‘길’로 비유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길’ 위에서 그래왔다.

확신이 없는데도 도움을 구하지 않고(심지어 지도를 켜보지도 않는다) 길을 찾을 때까지 태연히 헤매곤 한다.

발을 우당탕 헛디뎌 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도도하게 갈 길을 가는 고양이처럼,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10대였을 때 낯선 동네에서 논술 시험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을 마냥 직진하다가 지하철역을 지나쳐버렸다.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얌전히 스무몇 발자국 되돌아가서 안전히 전철을 타고 귀가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걸 모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대로 병정걸음을 걸었고, 지하차도를 지나 인적이 끊긴 대로변으로 진입하고야 말았다.

온갖 승용차와 트럭들이 위협적인 속도로 바람을 튕겨내며 지나다녔다.

머리 위로 슉슉 큰 그림자를 드리우며 유영하는 물고기 형님들을 보는 갓 태어난 새끼 문어가 된 것만 같았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버스 정류장이나 전철역이 나오겠거니, 고집스레 계속 걸었다.

그리 긴 거리도 아닐 텐데 어쨌든 목적지가 나올 때까지는 끝나지 않는 길일뿐이었다.

늦은 오후 그림자가 더욱 길어지는가 싶더니 어느덧 어둠으로 녹아 퍼지려 하고 있었다.

코 끝이 바람에 두들겨 맞아 발갛게 되었다.

이윽고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늦은 밤 산길을 걷다 주막 불빛을 발견한 보부상은 그 이상으로 안도했겠다고 생각했다.


겨우 당도한 정류장에서 ‘ㅇㅇ역’이라고 적힌 버스가 오자마자 덥석 잡아탔다.

방향이나 시간은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무슨 역으로든 도착만 하면 이제 알아서 잘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교통카드도, 잔돈도 없었지만 만 원짜리 몇 장이 든든히 지갑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


내민 만원을 보고 기사 아저씨께서는 잔돈 배출 버튼을 연신 누르셨다.

찰칵, 철그럭, 찰카닥-

고요한 버스 안에서는 철컥대는 소리가 특히 크게 울렸다.

아저씨는 시끄러운 버튼과 계속 실랑이를 하셨다.

잔돈통은 텅 빈 것이 너무나도 명백하니 이제 그만하고 내려주시든가 하면 좋겠다, 생각하며 그대로 두어 정거장을 버스 입구에 서서 갔다.


직선으로 와서 꽂히던 시선과 새로 탑승한 이들의 궁금증 가득한 눈빛이 너무 따갑다고 느낄 때쯤,

아저씨는 그냥 가서 앉으라고 손짓하셨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었던 터라 억울함과 감사가 뒤엉킨 마음으로 책가방 안에서 굴러다니던 귤 두 개를 잡았다.

화폐로서의 기능은 전혀 없지만 운행 서비스에 대한 일종의 가치 교환인 셈 치고 아저씨께 내밀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그것을 받아주셨다.

그렇지 않았다면 뜻하지 않은 무임승차로 지금까지도 찝찝했을 텐데.


주변을 살피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직진부터 한 결과는 보통 저랬다.

10월 3일 개천절, 구대륙 상공의 모스크바행 아에로플로트에 실려가던 한 영혼이 고질적으로 안고 있던 문제다.

탑승 게이트를 통해 러시아 국적기로 입장하면서부터 이미 스스로 낯선 곳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고,

발을 헛디딘 고양이처럼 행동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음을 먼저 인지했어야만 했다.


만약 그랬다면 평행세계에서는 과연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귀국했을까?

그런 비생산적인 의문을 가지기에는 의외로 꽤 괜찮은 모습으로 돌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문제 삼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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