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용 죽겠지

by 연목

시어머니에게 남편 이야기는 언제나 자랑으로 시작해 자랑으로 끝났다.
“해준 것 하나 없이도 알아서 척척 크는 아이였다.”
그때는 조금 지겹게 들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말 속에 담긴 사연을 알게 되었다.


남편의 어린 시절은 고단했다.
알코올 문제를 가진 아버지, 다닥다닥 붙어 살던 시누이 셋, 그리고 홀로 그 속을 버텨야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고, 돌아와서는 시댁 식구들의 술상을 차려야 했다.


형편이 나은 시누이들은 자기 아이들에게 좋은 옷과 장난감을 쥐여주고, 좋은 유치원에 보냈다. 그러나 남편은 늘 그 자리에 끼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누이들은 생계로 분주한 어머니에게 “아이 교육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라며 억울한 트집을 잡았다.


더 큰 상처는 할머니의 편애였다.
밥상에서조차 음식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았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남편을 안아주거나 업어준 적이 없었다. 늘 고모의 아들만 품에 안고 다녔고,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 아이 입에 넣어주었다.
그 이야기를 어머니는 수도 없이 들려주셨다. 그만큼 한이 깊이 맺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단한 생활 속에서도 영민한 남편은 스스로 공부를 잘해 내미는 성적표가 어머니의 유일한 기쁨이 되었다.
그 성적표는 잠시나마 어머니의 주름을 펴주는 약과 같았다.


남편은 그렇게 묵묵히 자기 앞가림을 했고,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서울의 꽤 괜찮은 대학교에 합격했고 안정된 직장을 손에 넣었다.
반면, 그렇게 떠받들던 시누이들의 자식들은 누구 하나 제대로 된 길을 가지 못했다.

ChatGPT Image 2025년 9월 16일 오후 10_48_36.png

드디어 어머니의 삶에도 빛이 스며들었다.
그토록 바라던 노총각 막내아들인 남편이 결혼을 하자, 어머니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만큼 기뻐하셨다.
긴 세월 종교에 기대어 버텨온 어머니에게 아들의 결혼은 믿음을 더욱 굳게 해주는 증거가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자랑은 멈추지 않았다.

한스러운 세월 끝에 얻은 위로가 곧 ‘끝없는 자랑’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편애가 아니었다.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빛이 된 아들을 향한 존경이었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눈물천에서 자라난 용이다.
누구에게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어머니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가장 귀한 보물이었다.

아픈 세월을 견딘 흔적이며, 살아남은 자에 대한 헌사였다.


나는 지금 그 용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시댁 식구들의 과한 자랑 속에서 “용용 죽겠지” 하는 심정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용은 내 곁에서 한 가정의 든든한 남편으로, 아이에게는 믿음직한 아버지로, 여전히 어머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아들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자라난 용.
그 용과 함께하는 날들이 쌓여, 나의 인생 또한 빛나는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