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우리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대학교 4학년이던 나는 반지하방이라는 낯선 공간으로 들어가야 했다.
햇빛 한 줄기 스며들지 않는 그곳은 시간의 감각마저 빼앗았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새벽인 줄 알았던 그 어둠 속에서, 우리 가족은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잠시 중국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2년을 보냈다.
답답한 현실을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다녀오면 집안 상황이 조금 나아져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오자 전혀 변화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집은 그대로였고, 외할머니까지 모셔야 했기에 우리는 더욱 좁고 빡빡한 일상을 살아내야 했다.
그 무렵 아버지가 구해오신 것이 작은 컨테이너였다.
옥상 위에 컨테이너를 올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해주셨다.
설렘도 잠시, 여름의 찜통더위와 겨울의 칼바람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봄과 가을만큼은 달랐다.
옥상에 놓인 평상 옆, 외할머니가 정성껏 키우신 토마토와 상추, 배추 사이로 나비가 날아드는 풍경은 우리만의 작은 낙원이었다.
봄과 가을, 선선한 날씨에 바람이 말랑말랑해지면 아버지는 어김없이 옥상으로 올라와 묻곤 하셨다.
"고기 물래?"
우리가 "네!" 하고 대답하면, 아버지는 생기 있는 얼굴로 얼른 정육점에 다녀오셨다.
숯불이 피워지고 삼겹살이 올라가면, 지글지글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옥상 가득 퍼졌다.
불빛에 반짝이는 기름방울이 튈 때마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때마다 외할머니는 평상 옆에서 상추를 뜯어오셨다.
막 따온 푸른 잎과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잘라 고기 위에 올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 이래야 진짜 맛이지. 내가 키운 거라 더 달다."
나는 그 상추쌈을 한입 가득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맛있어요, 할머니."
그러면 할머니는 손바닥을 탁 치며 웃으셨다.
"허허, 내가 괜히 키웠나. 니들 먹는 거 보니 내가 더 배부르다."
평소 오징어국과 된장찌개로 끼니를 때우던 우리에게 그 삼겹살은 세상 어떤 진미보다 달콤했다.
숯불에 구운 고기의 담백함은 후라이팬으로는 절대 낼 수 없는 특별한 맛이었다.
무엇보다 그 순간만큼은 가족 모두가 참 많이 웃었다.
아버지는 늘 우리에게 먼저 고기 익은 것을 챙겨주셨고, 어머니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으셨다.
때로는 숯향과 모기향 연기가 너무 진해 기침을 하기도 했고, 바람이 불면 연기가 온 얼굴에 달라붙어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우스꽝스러워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아이고, 우리 막내 울어!" 하며 어머니가 남동생의 뺨을 닦아주시면,
"울긴 뭘 울어, 연기 때문이에요!" 하며 남동생이 볼멘소리를 했다.
가끔 옆집 아저씨가 "냄새 좋네! 우리도 하나 해야겠다" 하며 인사를 건네면,
아버지는 "와서 같이 드세요!" 하고 넉넉하게 부르셨다.
실제로 오시지는 않았지만, 그런 훈훈한 인사만으로도 우리는 이웃과 함께 사는 기분이었다.
밤이 깊어가면 컨테이너 안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소리와 함께, 우리는 둘러앉아 마지막 한 점까지 아껴가며 먹었다.
고기가 떨어지면 아버지는 "라면 하나 끓일까?" 하시며 후식 제안을 하셨고, 우리는 "네!" 하고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게 먹고 나면 모두들 배가 부르다며 평상에 누워 하늘속 별을 올려다보곤 했다.
세월이 흘러 여동생과 나는 독립을 했다.
학교와 직장 때문에 선택한 길이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거리두기였다.
요즘은 문득 그 시절의 옥탑방이 그리워진다.
별빛이 쏟아지던 옥상에서 먹던 삼겹살의 맛,
외할머니가 손수 따서 올려주신 상추와 토마토의 향기는
어떤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다시 느낄 수 없는 우리만의 특별한 맛이었다.
돌이켜보니, 가난이 지독하게 싫었지만, 그때는 분명 행복이 있었다.
힘들고 부족한 순간 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웃고 나누며 보낸 시간이
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가끔 가족들과 만나면 그때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던 때가 제일 좋았지" 하며 서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시절 우리를 지탱해준 건 밥과 고기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었다.
한 줌의 연기와 한 점의 고기, 별빛 아래 평상에 모여 웃던 순간들—
그 소소한 일상이 우리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