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디 매매 할아버지

by 연목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코로나19로 인해 격리된 요양병원에서 홀로 눈을 감으신 그 순간, 나는 갓 태어난 딸을 품에 안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게 우리 딸이에요." 그 작은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을 전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은 지금도 가슴 한편에 돌덩이처럼 무겁게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내 인생 최고의 남자였다.

영남 8대 학자로 불릴 만큼 한학에 깊은 조예가 있으셨고, 평생을 학문에 매진하신 진정한 선비셨다.

젊은 시절에는 경찰로 사회에 몸담으셨다가, 나중에는 사업가로도 성공하셨다.

그 특유의 깔끔함과 선비 같은 꼿꼿함은 어린 나에게 경외감 그 자체였다.


승부욕 또한 대단하셨다.

제 아무리 어린 손녀라 해도 바둑에서는 절대 봐주시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말씀 끝에는 늘 같은 당부가 따라왔다.

"단디 해라, 매매."

이 말은 경상도 사투리로, 쉽게 풀면 ‘철저하게, 꼼꼼하게, 확실히 해라’ 정도의 의미다.

공부든 바둑이든 일상의 모든 일에서 단단히 준비하고 실행하라는 가르침이셨다.


주변 정리나 옷 매무새에도 결벽에 가까우셨고, 위생에도 철저하셨다.

매사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은 어쩌면 할아버지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꼿꼿함에는 날카로운 모서리도 있었다.

할아버지에게는 뚜렷한 편애가 있었고, 자신의 확고한 기준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자식이라도 금세 평가절하되었다.

장남인 아버지는 그 눈에 들기 위해 평생을 동분서주하셨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돈을 잘 벌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맏이로서 완벽하게 처신해야 했다.

아버지 어깨 위에는 늘 할아버지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이 얹혀 있었다.


반면 작은아버지는 본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운동선수이자 예술가였던 그는 할아버지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세상을 꼭 그렇게만 살아야 합니까? 저는 제 길을 갈 겁니다."

명절마다 터져 나오는 격렬한 언쟁은 어린 나에게 무서운 기억으로 남았다.


작은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격돌은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사사건건 대립했다. 집안 전체가 조용히 균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결국 작은 아버지는 종교선언을 하면서 절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명절에는 아예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당시 종친회 회장이셨기에 이 일은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밖에 없었다.


세월은 그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다.

서슬 퍼렇던 할아버지도 말년에는 치매라는 병마와 싸우셨다.

한때 영남 8대 학자로 수많은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명석한 두뇌가 점점 흐려져 갔다.

당신의 기개와 위엄이 조금씩 위축되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요양병원에서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적에게 패배하시고 떠나셨다.


이제 나는 할아버지를 중요한 반면교사로 삼아 그 삶을 되새긴다.

바르고 꼿꼿한 선비정신, 학자로서의 치열한 자세, 흔들림 없는 소신.
그 모든 것이 내게는 높고 빛나는 등불 같았다.
그러나 그 빛은 따뜻하기보다 날카로웠고, 많은 이를 품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는 다짐한다.
내 딸아이에게는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물려주리라.
확고한 소신은 간직하되, 사람을 이해하고 웃음을 나눌 줄 아는 어른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할아버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당신이 남겨주신 ‘단디’의 참된 의미를.


꼼꼼하되 따뜻하게,
확실하되 유연하게.


그렇게 ‘단디’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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