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젤예 내 사랑 베미

by 연목

이번 학기, 내가 맡은 어학당 반은 정말 역대급으로 공부를 안 한다.
20년 가까이 한국어를 가르쳐온 내 경력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절망만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반에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일명 ‘세젤예’ 베트남과 미얀마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는 베트남 학생 8명, 미얀마 학생 5명이 있다.
처음 이 학생들을 만났을 땐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사실, 이 반은 직전 학기 선생님들 사이에서 ‘레전드 문제아 반’으로 통하던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교실에 들어섰다.


그 예상은 수업 시작 5분 만에 현실이 되었다.


“투언 씨, 조용히 해주세요!”
“네, 선생님!”
하지만 또 5분도 안 되어 투언은 다시 종이비행기를 접어 책상 위로 날린다.

이 수업의 반장, 투언이다.


미얀마 학생 아웅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 어른스럽게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장난기 많은 게임 마니아다.
어느 날은 문법 수업 중 몰래 게임을 하다가 알림음이 울려 교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웅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죄…죄송합니다, 선생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지만, 친구들과 눈을 맞추며 금세 웃음을 터뜨린다.


시험 전날도 조용할 날이 없다.
“선생님, 우리 숙제 안 내도 되죠?”
“안 돼요! 꼭 해와야지요.”
하지만 막상 다음 날 숙제를 해온 학생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웃는다.
“괜찮아요, 다음에 잘하면 돼요!”


솔직히 공부하는 태도는 여전히 아쉽다.

시험을 망쳐도, 유급이 걱정돼도 “다음에 잘할게요~” 하며 웃어넘긴다.

그 태평한 모습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면 공부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낀다.


이 친구들은 따뜻한 마음과 다정한 배려심으로 나를 자주 감동시킨다.

어느 날, 내가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던 날이었다.
수업을 시작하려고 교실에 들어서자, 베트남 학생 리엔이 다가와 조심스레 종이컵을 내민다.
“선생님, 목 아프죠? 이거 드세요.”
작은 종이컵 속엔 꿀차가 담겨 있었다.

수줍은 미소와 함께 내 손에 컵을 쥐어주는 그 모습에, 말없이 마음이 따뜻해졌다.


쉬는 시간에는 이 친구들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각자 도시락을 펼쳐 교실 한가운데 모여 앉는다.

베트남 짜조, 미얀마식 카레, 뭘 넣었는지 알수없는 형태만 김밥인 김밥, 김치 없는 김치볶음밥까지.
“선생님도 같이 드세요!”
“와, 이거 정말 맛있네요.”
비록 한국어는 서툴지만, 아이들의 마음만큼은 넉넉하고 따뜻하다.
서로 음식을 나누고, 웃음과 장난이 끊이지 않는 시간들.


생일날은 더 특별하다.
베트남 학생 하나의 생일날, 미얀마 친구들까지 함께 케이크를 준비했다.
수업이 끝난 후엔 깜짝 생일 파티가 열리고, 어설픈 한국어로 “생일 축하합니다~”를 부르며 다 함께 축하한다.
그 모습을 보면 국적이 달라도, 언어가 다르더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공부는 여전히 잘 안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 감사하고 소중하다.


한국어 실력은 천천히 늘겠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과 교실을 가득 채우는 웃음소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깊게 자라고 있다.


오늘도 세젤예 베미들 덕분에, 교실은 따뜻하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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