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닭보듯 합니다.

그렇게 외숙모가 되었다.

by 연목

남편에게는 조카가 둘 있다.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도 외숙모가 되었다.

하지만 스스로 ‘좋은 외숙모’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내가 마음이 쓰이는 건 시누이의 딸, 둘째 조카다.

내가 처음 본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어느덧 20대 후반의 아가씨가 되었다.

작은 조카는 처음부터 사근사근하지 않았다.

삼촌에게도 인사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고, 나와 눈이 마주쳐도 고개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얘는 원래 그래.”
남편은 늘 이렇게 말했지만, 내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신혼 초, 나는 조카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며느리로서 잘해보이고 싶은 마음도 컸고, 가족 간의 정을 쌓고 싶었다.

연극 티켓, 콘서트 티켓도 어렵게 구해 남편과 셋이서 함께 간 적이 있다.

막상 공연장에선 조카가 나보다 더 몰입해 즐기는 듯 보였다.


나는 속으로 기뻤다. ‘이제 좀 가까워졌나?’

하지만 끝나고 나면, 언제나 아무 말이 없었다.
“어땠어요?”
차 안에서 조심스레 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그냥… 괜찮았어요.”
단답. 그리고 정적.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너무 애쓰는 건가… 마음이 앞서고 있는 건가…’


명절에 온 가족이 모였을 때도 비슷했다.
“밥 좀 더 먹을래요?”
“아니요.”
짧은 말끝, 웃음기 없는 표정. 괜히 서운해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조카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어머니 눈치, 시누이 눈치에 늘 긴장하던 내게 ‘이제 조카 눈치까지 봐야 하나…’ 싶은 마음이 더해지면서 짜증이 밀려왔다.


조카의 퉁명스러움은, 어쩌면 이미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시댁에 대한 미묘한 반감이 부풀려 놓은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외숙모로서 잘 챙겨주고 싶었던 마음, 사실은 조금 생색도 내고 싶었던 그 마음이 조카의 무심함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든 건 아닐까.


그럴 때면 문득, 거울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중학생 시절의 나도 그랬다.
삼촌은 편했지만, 새로 들어온 외숙모는 낯설고 불편했다.
외숙모가 책을 사주며 웃어도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 책, 한번 읽어볼래?”
“재미없을 것 같아요.”

외숙모의 얼굴이 굳는 걸 보면서도, 모른 척했다.


심지어 여동생이 가출했을 때는 괜히 화살을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돌렸다.
어느 날 친구가 불쑥 말했다.
“야, 네 여동생 가출했다며?”
“뭐? 그걸 어떻게 알아?”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창피했고, 괜히 원망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학교 가기 싫어! 외삼촌, 외숙모가 소문낸 것 같아!”

그 친구의 아버지와 삼촌은 이웃사촌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지금 돌아보면 억지였다.

내 분노는 외숙모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책임을 떠넘길 구실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카도 제 나름대로 마음을 표현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 생일날, 조카가 말없이 집에 들른 적이 있다.
“이거… 그냥 필요할 것 같아서.”
손에는 커다란 뽀로로 욕실 세트가 들려 있었다.

아이의 눈은 반짝였고, 조카는 곧장 고개를 돌리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분명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산 선물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그 마음을, 그 진심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소 닭 보듯 하는 사이여도 괜찮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쩌면 가족이란, 그런 불편함을 견디고, 오해를 품은 채 함께 머물다가,
조금씩 괜찮아져 가는 관계일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내 마음속 오래된 서운함과 허전함을 묵묵히 감싸주었던 나의 외숙모.
그분께, 너무 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조카를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외숙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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