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시골 깡촌에서 자라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나온 수재였고, 둘 다 맏이였다.
없는 집에서 오직 공부 하나로 세상에 발을 디딘 개천의 용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발견한 그들의 진짜 공통점은 다른 것이었다.
바로 '수집벽'이었다.
처음에는 사소했다.
동사무소 앞에 마련된 재활용 나눔터에서 엄마가 슬금슬금 옷을 가져오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말이다.
"엄마, 또 옷 가져왔어?"
"이거 봐, 얼마나 좋은 옷인데. 한 번도 안 입은 것 같아."
아나바다의 취지도 좋았고, 나도 그 옷들을 입었으며, 우리 역시 안 입는 옷이 있으면 가져다 놓곤 했다.
그때까지는 나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옷 다음에는 알루미늄 깡통이었다.
엄마는 깡통이 많이 나오는 노래방을 목표로 삼았다.
노래방 쓰레기통을 뒤지며 깡통을 모아 고물상에 파는 엄마의 모습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 우리가 그렇게까지 어려워?"
"아니야, 그런 게 아니라... 이런 걸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
점차 품목이 늘어갔다.
종이박스, 신문, 책, 철, 그리고 이름도 모를 온갖 잡동사니들.
외할머니까지 합세하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제 우리 집은 동네 사람들에게 '물건 버리는 곳'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알아서 우리 집 앞에 박스와 각종 물건들을 놓고 갔다.
나는 점점 집에 있기가 창피해졌다.
친구들을 집에 부르는 것도 꺼려졌다.
"너네 집 왜 이래?"
"아... 그냥... 정리를 안 해서..."
거실 한편에는 신문지 더미가, 다른 한편에는 깡통 자루들이 쌓여 있었다.
마치 고물상에 사는 것 같았다.
결국 어느 날, 나는 터지고 말았다.
“엄마! 제발 그만 좀 가져와! 우리 집 창피해 죽겠어!”
소리치며 쌓인 신문뭉치를 발로 걷어찼다.
더이상 집에 있을 수가 없어 가출을 감행했다.
친구 집에서 쪽잠을 자면서 생각했다.
부모님이 왜 이러는지를.
개천에서 용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다시 그 개천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평생 안고 사는 것이었다.
없던 시절의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라는, 아니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었다.
아빠가 낡은 전자제품들을 분해해서 부품을 꺼내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아빠, 이거 언제 쓸 거예요?"
"언제든 쓸 데가 있어. 버리면 나중에 후회해."
엄마가 찢어진 옷을 꺼내 걸레로 쓸 수 있다며 반가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서서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단순한 강박이 아니라, 가난했던 시절에 몸에 밴 생존 본능이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집은 여전히 고물상 같았고, 나는 여전히 창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부모님을 탓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내가 이 집을 정리해드리자. 부모님이 안심하고 물건을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드리자.'
우리 집이 고물상이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가난이란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사랑이란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으로도 나타난다는 것을.
부모님의 수집벽 뒤에 숨어 있는 것은 결국 우리 가족에 대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