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이 민원해결사

by 연목

내 남편은 누나보이다

“여보, 누나가 또 전화했어.”

남편 휴대폰 화면에 ‘누나’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나는 이미 숨을 고른다.

평소엔 소파에 반쯤 파묻혀 “아, 귀찮아. 나중에 하자”를 달고 사는 남편이, 누나 전화 앞에서는 어김없이 전투 태세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응, 누나.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시누이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 오빠가 그래. 엄마 병원 모시는 거 나만 하래. 자기는 바쁘다고…”

그러자 남편은 갑자기 슈퍼맨으로 변신한다.

세탁기 고장에도 꿈쩍 않던 그가, 누나 문제 앞에서는 날쌔게 “형한테 얘기해볼게”를 외친다.


신혼 초에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내가 형광등 갈아달라 하면 일주일은 지나야 움직이는데, 누나는 전화 한 통이면 바로 해결이라니.


그런데 그 이유를 알게 된 건 남편의 어린 시절 이야기 덕분이었다.

“누나는 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업했어. 여상을 나와서 집안에 보탬이 되면서, 나를 항상 챙겨줬지. 월급날이면 꼭 뭔가 사주고, 나이키 운동화도 사주고, 찍찍이 지갑도 사주고.”
“통닭도 사줬다면서요?”
“그럼. 그때는 통닭이 귀했거든. 누나 덕분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먹었지.”


그때 남편의 눈빛에는 어린 날의 따뜻한 기억이 고스란히 번져 있었다.


남편에게 누나는 단순히 다섯 살 터울의 언니가 아니었다.

어린 막내동생을 지켜주던 든든한 보호자였다.

하지만 정작 누나는 늘 희생하는 자리였다.

장남은 특별대우를 받고, 자신은 '딸이니까 당연히'라는 이름으로 온갖 책임을 떠안았다.


그래서 시누이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서운함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엄마가 또 오빠 밑반찬 해주시겠대. 엄마 몸도 안 좋으신데, 결국 내가 해야지.” 부엌에서 시누이가 투덜댄다.

“오빠는 일주일에 한 번 와서 반찬만 챙겨 가고, 나는 매일 엄마 모시면서 살잖아. 근데 그게 당연하대. 어릴 때부터 늘 그랬어. 아들은 왕자, 딸은 심부름꾼.”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 늘 중간자다.

형한테는 “엄마 모시는 거 누나 힘들어하니까 도와”라고 하고, 누나에게는 “형도 맏이로서 부담이 있잖아”라며 두 편 다 들어준다.


결국 시누이는 남편을 붙잡는다.
“네가 말해야 오빠가 듣지. 전화 좀 해줘.”

남편은 또 형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를 끊은 남편의 표정은 착잡하지만, 시누이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뭐래?”
“시간 나면 온대.”
“시간 나면? 그게 언제냐고! 맨날 그런다니까!”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긴 하소연 속에서도, 남편은 묵묵히 듣고, 위로하고, 해결책을 찾으려 애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돌아가신 시어머니 제사 이야기를 꺼내며, 시누이는 남편에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옆에서 듣던 조카까지 합세했다. 늘 돌부처 같던 남편조차 살짝 툴툴거리며 전화를 받았다.

"그래, 알았어. 근데 나도 할 말은 좀 들어줘야지…" 묵묵히 받아주던 그가 드물게 내뱉은 투정이 안쓰러웠다.

"나 혼자 다 준비하는 것 같아." 목소리에는 원망이 묻어나고, 톤은 점점 높아진다.

그리고 결론은 늘 같다. 남편은 형에게 전화하고,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똑같다.

"알았어, 시간 나면 갈게."


남편은 막내아들로서 권리는 적지만, 의무는 많은 자리에서 언제나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다.


가족이 갈라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버팀목이 되어주려는 것이다.

가끔은 속 터질 만큼 답답하지만, 그 진심을 알고 나니 존경심이 들었다.


사람들은 보통 성공이나 업적, 명예로 누군가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나는 다르다.
남편이 오늘도 가족 전화를 받으며 “알았어, 내가 할게”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모습에서 극강의 인내와 성숙한 어른의 품을 본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왜 매번 내 형광등 갈아달라는 부탁은 늦게 해주는 걸까, 슈퍼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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