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피아노를 참 못 쳤다.
동네 또래들 중 가장 먼저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못하는 아이였다.
일곱 해를 꼬박 배웠다. 체르니 40번까지는 갔지만, 그건 배운 시간과 엄마가 갖다바친 학원비덕분이었다.
80년대 후반, 경제 부흥과 함께 불어온 독일식 교육열은 엄마를 사로잡았다.
“교양 있게 살려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
엄마의 믿음은 단단했고, 나는 그 믿음에 억지로 끌려갔다.
짠순이였던 엄마는 교육에 관해서만큼은 아낌이 없었다.
그 마음이 고맙기도 했지만, 문제는 단 하나. 나는 재능이 없는 아이였다는 사실이었다.
진도는 늘 더뎠다. 한 곡을 세 달 넘게 붙들고 있어도 진전이 없었다.
결국 엄마는 학원을 바꾸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피아노 학원에 가는 길마다 배가 아팠고, 단전 깊숙이에서부터 설사라도 쏟아낼 듯 긴장이 몰려왔다.
“엄마, 피아노 싫어. 그만두면 안 돼?”
간절히 매달려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
“조금만 더 해. 언젠가 다 도움이 돼.”
결정적인 상처는 여동생이었다.
타고난 음감과 빠른 손놀림으로, 동생은 불과 2년 만에 내가 4년 동안 배운 곡들을 따라잡았다.
어느 날,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나를 불렀다.
피아노 앞에는 동생이 앉아 있었고, 나와 같은 곡을 치고 있었다.
선생님은 화난 얼굴로 말했다.
“동생은 이렇게 잘 치는데, 언니가 그래서 되겠냐?”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고, 심장은 아래로 철렁 떨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감정이 수치와 부끄러움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두고두고 그 레슨실에서 바로 뛰쳐나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상처는 표현해야 맞았다. 엄마에게 혼나고 맞는 것을 그렇게 두려워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피아노를 못 쳐서 가장 속상한 건,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선생님의 그런 방식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눈치 빠른 여동생이 원장 선생님의 지도 방식을 엄마에게 조르르 일러바치면,
엄마는 바로 전화로 상담을 넣었고,
원장 선생님은 나를 원장실로 불러 대질하듯 물으셨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여동생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줘.”
어차피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조용히라도 다니고 싶었다.
또 당시 여동생은 피아노 전국대회를 휩쓸며 상을 받아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바이올린마저 능숙하게 다뤄, 어떤 악기로 예중을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속으로 ‘왜 나는 이렇게 못할까’ 하고 자책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비교도 할 수 없는 재능 앞에서, 스스로를 질책하며 마음 한쪽이 무너졌다.
초등학교 6학년 말, 나는 드디어 피아노에서 해방되었다.
중학교 입학보다 더 기뻤던 건, 다시는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건반 근처에 가지 않았다.
검은 건반, 흰 건반만 봐도 내 손등을 볼펜으로 ‘탁탁’ 치던 선생님의 그림자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꾼다.
엄마 눈치를 보며 억지로 앉아 있던 그 건반이, 훗날 다시 내 곁에 살포시 찾아왔다.
아이의 태교를 채워주던 모차르트의 맑은 음표들, 육아의 고단함을 덜어준 조성진의 쇼팽 발라드, 백건우의 베토벤 소나타, 손열음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등.
태교의 시간에도, 아이를 키우는 나날에도, 나는 모차르트와 쇼팽을 비롯한 수많은 피아노 선율을 귀에 담았다.
모차르트의 작은 별 변주곡은 아기의 발길질처럼 명랑했고, 쇼팽의 야상곡은 지친 밤을 다독여주는 위로였다.
그 음악들은 때로는 나를 토닥였고, 때로는 바람처럼 창문을 열어주었다.
내 육퇴(육아퇴근) 시간은 그 음악을 따라 조금 더 깊고, 넓고, 투명해졌다.
피아노는 이제 더 이상 아픔의 기억이 아니다.
오래된 상처 위로 스며드는 빛, 내 안의 풍경을 밝혀주는 투명한 소리다.
이제는 연주하지 않아도, 그저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쁘다.
“엄마, 오늘은 무슨 음악 들어?”
“음, 모차르트? 아니면 손열음?”
“좋아! 나는 신나는 게 좋아!”
귀에 닿는 순간, 피아노 선율은 삶을 풍성하게 하고 마음을 아름답게 물들인다.
어릴 적엔 도망치고 싶던 피아노였지만, 이제는 나와 아이를 웃게 해주는 다정한 벗이 되었다.
"피아노야, 이제는 네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