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사어의 자리
2년 전의 기억이 불쑥 찾아왔다. 사이먼을 처음 만난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Simon입니다."
종로에 있는 한국어학원 고급반 교실에서였다. 서른 살의 영국인 번역가인 그는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더 정확한 번역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러 온다고 했다.
"한국어에는 '정'이라는 단어가 있잖아요. 이걸 영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수업이 끝난 후 사이먼이 남아서 물었다.
서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이라는 건...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에요. 그냥 느끼는 거죠."
"느끼는 거라..."
사이먼이 그 말을 되뇌었다. 그의 파란 눈동자에서 뭔가 따뜻한 것을 본 것은 그때였다.
그날 이후 사이먼은 종종 수업 후에 남아서 질문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한국어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점차 한국 문화, 한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져갔다.
"한국 사람들은 왜 나이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해요?"
"왜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어려워해요?"
"왜 혼자 있는 시간을 쓸쓸하다고 생각해요?"
서윤은 그의 질문들에 답하면서 자신도 한국 문화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외국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자신의 나라, 자신의 언어가 낯설기도 했다.
사이먼과의 관계는 서윤에게 새로운 언어를 가르쳐주었다. 감정의 언어였다.
"You look beautiful today."
그가 영어로 말할 때와 서툰 한국어로 말할 때의 느낌이 달랐다.
"오늘... 예뻐요."
같은 의미였지만 한국어로 말할 때 더 진심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가 한국어로 표현하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윤은 사이먼과 함께 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이 문장의 주어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오랫동안 부사어처럼, 그저 문장을 꾸며주는 역할로만 살아온 것 같았는데.
사이먼은 논리적인 사람이었다. 명확한 것을 좋아했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어의 모호함을 점점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또 그와의 관계는 애매했다. 선생과 학생으로 시작했지만, 언제부턴가 그 이상이 되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는 정의하기 어려웠다.
"We're dating, right?"
어느 날 그가 물었다. 직접적이고 명확한 질문이었다. 영어다운 질문이었다.
"글쎄요."
나는 한국어로 대답했다. 모호하고 우회적인 대답이었다.
그때 그의 표정을 기억한다. 당황스러워했다. 영국인인 그에게 '글쎄요'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이었을 것이다.
"What does that mean exactly?"
"그냥... 잘 모르겠어요."
그는 답답해했다. 나도 답답했다. 하지만 정말로 잘 모르겠었다. 이혼 후 처음 만난 남자였고, 게다가 외국인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다.
자궁수술을 받은 것은 사이먼과 만난 지 6개월 후였다. 갑자기 찾아온 출혈과 고통. 응급실에서 의사는 말했다.
"적출해야 합니다."
간단한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었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여성으로서의 어떤 것이 사라진다는 것.
사이먼은 병원에 와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차가웠다. 아니, 내 손이 더 차가웠을 수도 있다.
그가 영어로 물었다.
"Are you okay?"
나는 한국어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수술 후 몸이 달라졌다. 호르몬의 균형이 깨지면서 감정의 기복이 심해졌다. 어떤 날은 우울하고, 어떤 날은 불안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사이먼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때로는 부담스러웠다.
"You should see a counselor."
"상담을 받아보세요."
그는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문제가 있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서윤은 그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마음의 문제를 쉽게 남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특히 전문가에게는.
관계는 서서히 멀어졌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 아니라, 감정적인 거리 때문이었다. 그녀는 점점 더 한국어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는 영어로 이해하려고 했다.
"What are you thinking about?"
"뭘 생각하고 있어요?"
그의 질문에 서윤은 대답할 수 없었다. 한국어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생각들이었는데, 영어로는 더욱 불가능했다.
"그냥... 아무것도."
"Nothing?"
"네, 아무것도요."
하지만 아무것도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것들이었다. 민우에 대한 그리움,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아쉬움, 변해버린 몸에 대한 낯설음, 불확실한 관계에 대한 불안.
사이먼이 떠난다고 했을 때, 서윤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일이었다.
"My visa is expiring, and I got a job offer back home."
"비자가 끝나가고, 본국에서 일자리를 구했어요."
합리적인 이유였다. 그는 언제나 합리적이었다.
"I'll miss you."
"보고 싶을 거예요."
미래시제였다. 확실한 감정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공허했다.
사이먼이 떠나기 전 마지막 날, 그녀에게 편지를 건넸다.
"한국어로 썼어요. 문법이 틀릴 수도 있어요."
집에 와서 그 편지를 읽었다.
"선생님께, 한국어를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힘들어하는 걸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언젠가 선생님이 정말로 괜찮아지길 바랍니다."
편지는 문법적으로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 더 슬펐다. 감정은 사라지고 정중함만 남은 것 같았다.
공항에서 그를 배웅했다. 마지막 포옹은 짧았다. 그는 실용적인 이별을 좋아했다.
혼자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생각했다. 문장 속 부사어처럼, 나는 언제나 중심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삶에서 부가적인 요소였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