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성 토론 모임
작년 3월, 독서토론리더 연수를 시작할 때의 나는 어딘가 우쭐해 있었다. 국문학과 출신에 20년간 국어를 가르쳐온 경력이라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첫 모임에서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육아에 지쳐 겨우겨우 책을 읽어온 나와는 달리, 60대 선생님들의 논제는 날카로웠고 질문은 예리했다.
6개월의 연수 과정을 거쳐 8명에서 6명으로 줄어든 우리 기수. 60대 4명, 50대 1명, 그리고 막내인 40대 나. 전직 교사, 공무원, 회사 임원이셨던 어르신들의 해박한 지식은 그들이 내뿜는 언어 하나하나에 스며있었다. 어느새 나는 복사물 인쇄하고 뒷정리하며 회의록 정리하는 조교 같은 역할을 맡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엔 불만투성이었다. 반말이 오가고 깜빡이 없이 무턱대고 끼어드는 토론 방식이 답답했다. 내 까탈스럽고 예민한 성격으로는 진작 발을 뺐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1년째 성실하게 출석하고 있다. 모임이 기다려지는 것이다.
변화의 계기는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찾아왔다. 육아와 시어머니 병간호로 지쳐있던 나에게 할머니와 시어머니의 장례가 연이어 닥쳤다. 그때 선생님들은 나를 조용히 위로해주셨다. 뜨끈뜨끈한 오지랖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품격 있는 배려였다. 바로 그 순간 깨달았다. 이분들이 진짜 어른이라는 것을.
이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반갑다. 냉정하고 이지적인 훈장님 같은 남자 M선생님의 날카로운 분석, 조용하고 꼼꼼한 전직 공무원 L선생님의 체계적인 정리, 매사 유쾌하고 적극적인 H선생님의 활기찬 에너지, 완벽주의자 문창과 출신 K선생님의 섬세한 통찰. 그리고 늘 정신없고 산만한 막내 나까지. 우리는 정말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우리 모두 책에 미쳐 있다는 것이다. 한 달에 두 번씩 도서관에 모여 읽은 책을 해부하고 질문거리를 만드는 일에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는다. 각자 다른 인생의 궤적을 걸어온 사람들이 책 한 권을 매개로 만나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60대의 풍부한 인생 경험과 철학, 50대의 성숙한 시각, 40대의 현실적 고민이 한데 어우러져 예상치 못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때로는 격렬하게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서로 다른 별자리지만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북극성처럼, 우리는 책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모여 서로에게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처음의 교만함은 온데간데없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이 모임에서 배우는 것은 단순히 책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삶의 연륜이 주는 깊이,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무엇보다 책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다. 60대 어르신들의 '극성맞음'이 사실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달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책에 극성맞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북극성은 항상 그 자리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우리 모임의 이름처럼, 책이라는 북극성을 따라 모인 극성맞은 사람들. 서로 다른 세대이지만 같은 별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우리의 여정이 점점 더 소중해진다. 독서토론 모임이 점점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