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오키드와 나쁜 입버릇

난해시, 기괴함 주의

by 그린버드

(표현, 주제 주의 부탁드립니다)


*


<플라스틱 오키드와 나쁜 입버릇>

​커튼 뒤에서 누군가 내 혀를 잡아당기고 있어, 언니
이건 그냥 기분의 문제일까?
식탁 위에는 잘 구워진 스테이크 대신
뜨거운 수증기를 내뿜는 가죽 구두 한 짝
우리는 포크를 들고 정중하게
서로의 발목을 썰어주기로 약속했지
창밖에는 얼굴 없는 합창단이
입을 꿰맨 채 할렐루야를 부르고

​장면 전환, 컷.

​의사는 말했다, 환상은 위장병 같은 거라고
약국에 가서 솜사탕을 처방받으세요
하지만 나는 알고 있어
어젯밤 내 뱃속으로 기어 들어간 서커스단이
아직도 탬버린을 흔들고 있다는 걸
코끼리가 밟고 지나간 자리마다
보라색 곰팡이가 피어나고
나는 거울 속의 소년에게 립스틱을 발라주며 물었지
너는 왜 아직도 집에 가지 않았니?
소년은 킬킬거리며 내 눈알을 사탕처럼 굴리고

​아, 비가 내리네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빗방울이 아니라
오래된 흑백영화의 필름 조각들
우산을 쓴 신사들이
녹아내리는 촛농처럼 길바닥에 들러붙어
누군가 소리쳤다
불이야! 극장에 불이 났어!
하지만 타오르는 건 극장이 아니라
어제 우리가 나누었던 키스,
그 축축하고 비린내 나는 젤리 같은 시간들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언니
구두는 다 식어빠졌고
접시 위엔 주인 없는 가발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우리는 언제부터 이 지루한 연극의
관객이자 배우이자 소품이 되었을까?
가면을 벗어봐
그 안에는 또 다른 가면이
피 흘리며 웃고 있을 테니까

​자, 이제 디저트를 먹을 시간이야
입을 크게 벌려
이 환멸이라는 달콤한 독약을
남김없이 삼켜야 하니까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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