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에서 온 인사

by 그린버드

<응달에서 온 인사>

눈으로 빚은 인간을 사랑했다. 뺨을 만지면 차가운 물기가 묻어 나오는. 그는 온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자기가 내릴 때의 구름 모양이 원래는 이런 회색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또 고드름을 투명하게 얼리는 법 같은 것들을 말해줬다. 나는 그의 입김들을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언젠가 그것들로 빙수를 만들고 싶었다.

​매일매일 그를 만나 그의 침묵을 들었다. 그는 표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의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는 항상 가로등 불이 켜지고, 제설차들도 시동을 껐다. 집에 돌아가면 성에 낀 냉동실을 한참 바라보다 잠이 들곤 했다. 그의 하얀 입김들을 모아둔 냉동실을.

​그와 있다 보면, 아주 잠깐이지만, 겨울이 영원할 거라고 믿어졌다. 그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얼어붙은 두 사람이 서로에 의해 녹아내리는 슬픈 멜로 영화처럼.

​우리 사이에 봄이 오지 않는다면요, 내가 태양을 가려볼게요.

​어느 날은 서 있기엔 볕이 너무 따가웠다. 계절은 겨울이었지만 이상 고온이었다. 당신도 녹지 않냐고 물어보려던 것을 꾹 삼키고 말았다. 나는 그 그늘에서 땀을 흘리며 그가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오랜만에 응달에 가서 몸을 굳히고 왔어요. 응달은 볕이 들지 않아도 아늑하지요. 나는 가만 듣다가

​당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온도가 없어요 나라고 아무런 열기도 없는 줄 알아요 화가 치밀었다. 그동안 그가 자신의 결정(結晶)에 대해 이야기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의 중심이 알고 싶었고, 그 역시 나의 체온에 대해서도 궁금해하길 바랐다. 그늘에서 양지로 걸어 나갔고 그는 눈밭에 그대로 박혀서 녹아가는 손을 흔들었다.

​그를 볕 아래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눈송이 피부에 박힌 돌멩이 눈동자와 단 하나의 색채를 보았다.

​가까운 미래에 포옹이 있을 거라고 줄곧 생각해 왔는데. 지금껏 그와 나 둘 중 누구도, 서로에게 스며들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3월의 눈사람처럼 동시에 무너지고 동시에 증발하길 바랐다.

​강가에 가서 얼음틀을 거꾸로 들고 바닥을 두드렸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부수어보려고 망치를 들었을 때, 어디선가 첫눈을 기다리는 아이의 노래가 들렸고 나는 얼음틀을 그대로 버려둔 채 바깥으로 달려갔다.

​도망친 곳에는 물웅덩이가 있었다. 그가 녹아내리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것이었다. 내가 한철이었더라도 당신은 적당히 따뜻하게 지내요. 이따금 사람들과 꽃구경을 가기도 하고. 오래된 한기와 동상은 나를 더 질척이게 할 테니까요. 당신의 목도리는 포근했어요.

​나는 그가 적셔둔 몇 줄의 물기와 조용한 계절들을 기억하려고 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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