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압도하는 장엄함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대부분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 많은 상점이 문을 닫고 시내가 조용하다. 여행객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이것도 경험이고, 오히려 쉬어간다는 생각으로 근교 몬세라트 수도원에 다녀왔다.
투어 프로그램도 있지만 직접 부딪히며 가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라 생각하여 셀프로 찾아간 몬세라트. R5열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려 산악열차로 갈아타는 꽤 긴 경로다. 약간 오전의 나른한 햇살이 기차 안으로 들어와 지루해질 무렵쯤 창밖에 웬 장엄한 돌산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산은 점점 가까워지고 산악열차 환승역에 다다를 때쯤 이런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저 멀리 프랑스경계 산맥도 보인다. 우리나라 산과는 또 다른 느낌.... 어떻게 이런 곳에 수도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나는 무교인데도 그 장엄함과 엄숙한 분위기가 절로 느껴지는 수도원. 성지순례지의 하나인 검은 마리아상 손을 만지며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무탈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것도 부족해 10유로를 내고 초 3개를 사서 다시 한번 더 빌었다. 별일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요즘 든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기념 미사+소년합창단 공연까지 살짝 맛보고 사람이 몰리기 전에 다시 시내로 복귀했다. 반나절 일정으로 딱 좋은 코스였다
시내로 돌아와 문을 연 식당 중 마음에 드는 곳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꼴뚜기튀김인지 뭔지 진짜 jmt.. 까르보나라도 정말 꾸덕한 정통 파스타 느낌. 여기에 레몬맥주까지 곁들이면... 어후 다시 생각해도 좋다.
돌아오는 길 오빠의 소원이었던 150년 된 초콜릿 가게를 들렀다. 3일째 본 것 중 오빠가 제일 행복해 보이던 순간이었다. 근데 그럴 만도 한 게 초콜릿이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면서도 사람 기분 좋게 하는 당도였다. 겉멋 든 힙한 카페보다 별거 없어도 세월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분위기가 나는 이런 카페가 좋다.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한 숨 자고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일몰을 보러 갔다. 어째 신기한 게 이번 여행은 날씨운이 제대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보라+분홍빛 하늘이 눈앞에 펼쳐질 때 그 기분 좋음이란...
저녁은 크리스마스 만찬으로 숙소 근처에 작은 스테이크집을 예약했다. 적당히 격식을 차리면서도, 적당히 캐주얼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와인 가격이 미쳤다. 우리나라였으면 바틀당 10만 원 받았을 텐데 여긴 비싸도 5만 원? 남은 일정동안은 와인에 집중해야지...^^
하루가 48시간 같았던 스페인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뭔가 크게 화려하진 않지만 일상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기분 좋게 쉬어가는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낸 느낌! 화려한 케이크, 의상, 장식이 없어도 은은하게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게 더 잔상처럼 남는다는 걸 바르셀로나에서 느꼈다. 이 온도를 기억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