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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May 22. 2021

1. 어른들이 어려워하는 것들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

어렸을 적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뭐든 걸 다 할 수 있는 만능인이었다. 아빠~ 엄마~만 부르면 막히던 일이 대부분 해결되었으니까. 자전거를 타고난 뒤, 집이 2층인 탓에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었고 그때마다 아빠를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그 많은 소리 중 내 목소리를 귀신 같이 알아듣고, 아빠는 한걸음에 계단을 내려와 슈퍼맨처럼 내 자전거를 번쩍 들고 올라갔다. 워킹맘으로서 바빴던 엄마도 내가 어려워했던 대부분을 막힘없이 해결해주던 나와 동생의 슈퍼우먼이었다.


그런데 이번 제주 여행을 하며, 우리 부모님도 우리의 도움 없이는 못하고 어려워지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맛집에서 먹기 위해선 테이 블링으로 예약을 해야 했고, 공항에서 줄을 좀 덜 서기 위해선 생체인식 등록이 필요했다. 식당 예약 기계를 본 아빠는 주눅이 들어 작게 한마디를 건넸다. ‘엄마랑 둘이와서는 이거 먹지도 못하겠네~‘. 아빠는 돋보기가 없으면 지문인식 등록도 할 수가 없었다. 꽤나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을 하는 당신들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못하는 게 많아져, 행여나 주눅이 드시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맛집 예약 어플. 편하지만 누군가에겐 어려울지도

동네에서도 이런 풍경들을 몇 번 봤다. 키오스크는 이제 너무 당연한 예가 되었고, 파리바게트에서 이름 모를 빵을 두리번거리시며, 도대체 이 많은 선택지 중에 뭘 사야 할지 고민하시는 아저씨, 그 앞에서 아주 기계적인 빠른 속도로 ‘포인트카드 있으세요?’ ‘적립해드릴까요?’를 묻는 아르바이트생. 아저씨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짓자 일단 뒷손님부터 결제하고 보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생. 아파트 단지 음식물쓰레기 처리기계가 자동 카드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어떻게 익혀할지 걱정하는 할머니 등등.. 어른에서 더 어른이 될수록 변화의 속도를 버거워하는 모습을 요즘 들어 더 자주 발견한다.  


내가 아무리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한들, 나도 몇십 년 뒤엔 비슷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 것 같다. 지금에야 ‘주눅 들고 살지 말자’라고 다짐하지만 막상 현실에 닥치면 옛날 했던 방식이 그립고, 변화를 낯설어하고 있겠지. 고리타분하게 ‘키오스크 문화’를 욕하거나, 변화의 흐름을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다. 잘만 쓰면 편한 게 사실이니까. 테이 블링으로 예약을 해두면, 굳이 가게 문 앞에 앉아 내 이름 부르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공항에 지문등록을 해두면 시간 절약이 되는 게 사실이니까.


 키오스크 제조사들이 좀 더 다양한 연령대를 고려해서 시스템을 구축하거나(특히 글씨 크기..), 어떤 세대도 변화를 겁내지 않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같은 것들을 좀 더 활성화하며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시대의 흐름을 함께 타고 가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다. 각자마다 이해할 수 있는 속도가 다를테니, 제일 중요한 건 변화에 익숙한 사람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기다려주는 태도. 어르신이 키오스크로 햄버거 주문을 할 때, 재촉하지 않고 그들의 속도로 천천히 익숙해지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되자. 우리도 언젠가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될 테니 말이다.


키오스크의 확산으로 일상이 불편해진 노인, 시각장애인, 발달장애인을 떠올리면 매끄러움의 추구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p237, 사이보그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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