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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May 25. 2021

2. 걸으니 보이는 것들

지난 주말 안양천을 따라 7.7km 걸었다. 구일역에서부터 시작해 최종 목적지 석수역까지 발 닿는 대로 두 시간 정도걸었다. 꽤나 자주 차로 지나다니던 거리였는데, 처음 와본 동네마냥 걸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곳곳에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들, 무리 지어있는 오리 떼와 고고하게 돌 위에 올라와있는 새들, 어르신들의 놀이터 파크골프장, 하나의 천을 사이에 두고 다른 세상처럼 너무 다른 두 동네 등등..  

걷다보니 석수역 2번출구앞이야아아-~~~~


7.7km를 걷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최종 목적지에서 완주 스탬프 도장을 찍은 것보다, 길을 걸어오며 내 눈에 새롭게 보이던 풍경들, 손잡고 함께 걸은 오빠와 나눴던 시시콜콜한 대화들, 마스크 너머로 간간히 와닿던 풀냄새들이 더욱 기억에 남았다. 그냥 쭉 걸었을 뿐인데, 오빠도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라고 했다. 오감을 열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 내가 걷기를 즐겨하는 이유 중 하나다.


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길 위에서 만난 별것 아닌 순간과 기억들이 결국 우리를 만든다” - [걷는사람, 하정우] 중에서-


무엇보다도 걷기가 좋은 또 다른 이유. 걸으면 계절이 더 생생하게 와닿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걷기 코스는 우리 집 앞 한강인데, 봄에는 온몸을 간질거리는듯한 바람이, 여름엔 습한 물 냄새와 긴 해가, 가을에는 솜사탕 같은 구름 아래 시원한 바람이, 겨울엔 꽁꽁 언 물과 뺨에 맞닿는 차가운 공기가 맴도는 곳이다.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를 차로 다닐 땐 볼 수 없었던 계절의 변화도, 한강변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눈에 담긴다. 오늘은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강변의 수풀이 우거지고 해바라기가 보인 날이었다. 곧 이곳도 계절이 바뀌고 가을이 오면, 억새밭으로 변해있겠지.

작은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한강변. 저 위 차들은 볼 수 없는 풍경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문득 3년 전 베를린에서 친구들과 하루 만에 17.5km를 걸었던 게 생각난다. 걷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다. 서울로 치면 합정역 -> 강남역 이상의 거리를 걸은 건데, 사실 그때 걷고 돌아보니 그 숫자가 찍혀있었던 거라 막상 걸을 땐 체감하지 못했다. 다 걷고 나니 발에 불은 났지만, 그래도 덕분에 그 여행 메이트들과는 17km를 걸으며 보고, 듣고, 맛보고, 느낀 것들을 3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날 때마다 얘기 중이다. 아마 30년이 지나도 그때 걸었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을 듯?


아마 전무후무할 내 인생걷기기록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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