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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Jan 02. 2022

기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들 in 제주 - 4일 차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는 한 해의 '첫째 날'

새해를 여행지에서 맞이한 건 처음인 것 같다. 창을 열어보니 구름 한 점 없었고, 우리는 일출을 보러 나갈 채비를 했다

구름한점 없는 하늘

정해진 목적지 없이 동쪽 해안도로로 가는 차들을 따라가 보니,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도 떴고, 내일도 뜰 해 이지만 뭐든 처음은 설레는 거니까. 오늘 첫 해를 본마음으로 한 해를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은 모두 같았겠지. 다행히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 위로 해는 본인이 일 할 시간에 맞춰 천천히 솟아올랐다. 모두가 서로에게 복을 나누며 각자의 소원을 빌고 있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체크아웃을 준비했다. 올해의 첫날이지만 동시에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니..  그래도 아쉬워야 또 오겠지? 오늘은 꼭 세 끼를 모두 챙겨 먹기로 다짐하고 근처 솥밥 집을 찾아갔다. 새해 첫날임에도 문을 여시는 가게가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 행원리를 떠나기 아쉬워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잠시 바다 멍을 때리며 정든 동네를 떠날 준비를 했다.

날이 좋아 오늘은 열심히 걷기로 다짐하고 함덕해수욕장 근처의 서우봉을 들렀다. 얕은 산봉우리를 오르는 내내 옆에서 들리는 파도소리가 asmr처럼 귀에 쏙쏙 꽂혔다. 일정하게 넘실대는 파도의 풍경에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주변의 사소한 것에 자주 감탄할수록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고 하는데, 일상 속에서도 감탄이 있는 삶을 살려 노력해야겠다(박웅현 작가님이 얘기하신 삶의 촉수가 발달한 사람!)

서우봉에서 내려와 지도에서 갈만한 목적지를 찾다가 제주 4.3 기념관이 눈에 들어왔다. 왜 여러 번 제주도를 왔었지만 몰랐을까. 마음 편히 놀고 싶어, 어두운 역사를 들여다보지 않으려고도 했던 것 같다. 예상했던 대로 이곳을 둘러보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내가 배웠던 것보다 뼈아픈 역사였고 누군가에게 제주는 비극의 땅일 수도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배웠다. 기념관을 나서서 한라산 아래 산간을 보는데 기분 탓인지 제주의 땅이 쓸쓸해 보였다. 생각보다 관람객들이 없어 안타까웠는데 오늘은 1/1일이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해보기로..

그래도 여행이니 다시 텐션을 조금 높여보고자 제주 시내에서 맛있는 피자를 먹고 다른 전시를 찾았다(꼭 제주에서 흑돼지, 회만 먹을 필요는 없으니!). 노형 슈퍼마켓이라는 곳에서 하는 미디어아트였는데 정말 솔직히 말하면 실망스러웠다. 인스타 인증만을 노린 듯 한 공간 같은 그런 느낌.. 돈과 시간이 아까웠지만 여행에서 꼭 모든 경험이 내 맘에 들 수는 없고, 이것도 여행의  일부임을 인정하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정말 맛났던 eat my pizza
노형수퍼마켓의 전시.. 솔직히 내 취향은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남은 3시간의 시간. 뭘 하며 마무리하며 좋을까 고민하다가 올해 첫 일몰을 보기로 했다. 이 역시 의미부여겠지만 오늘 하루는 그럴 수 있지! 여행 때마다 종종 오던 서쪽의 곽지해수욕장에서 구름에 가려진 일몰을 보고 공항 근처에서 자주 들리는 '신의 한 모'라는 두부가게에서 마지막 제주 식사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글로 여행을 풀어보니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여행을 복기하게 된다. 좀 더 나의 오감과 기억을 다시 동원하게 되고, 다시 한번 글로 두 번째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든다. 글솜씨가 뛰어나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어딜 여행하던 이런 글쓰기를 여행 루틴으로 삼게 될 것 같다. 좀 더 섬세하게 여행을 기억하고 싶은 분들이라면 여행 글쓰기를 추천해본다.

안뇽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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