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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용연 Feb 18. 2022

10. 내 자리 없는 사무실

우리 회사는 고정좌석이 없다. 오는 순서대로, 그날 마음에 드는 좌석을 찾아 앉으면 된다. 마치 대학교 때 중앙도서관 자리 맡는 기분이다. 처음엔 아침마다 책상을 닦고 사물함에서 필요한 사무용품들을 꺼내와 자리를 세팅하는데만 15분. 퇴근 전에는 출근길 했던 동작들을 거꾸로 플레이. 솔직히 처음엔 낯설고 불편했다. ‘내 공간’이 없다는 느낌도 들고, 매일 출퇴근 때마다 준비하고 정리하는 것도 번잡했다.

하루는 창가, 하루는 삼각책상, 하루는 높낮이책상. 매일다른 내자리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매일 자리가 바뀌는 근무 형태를 3개 월남 짓 경험해보고 나니, 나름의 장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반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된다. 고정된 내 자리가 있을 땐, 일단 가져오고 널브러뜨리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 회사 이사할 때 애를 많이 먹음). 이제는 준비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물건을 많이 늘여 놓지 않는다. 아예 사무실에 가져다 놓지도 않는다. 진짜 미니멀리스트들이 보기엔 ‘저게 미니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정말 최소한이다.



또 하나의 장점. 청소도 자주 하게 된다. 내가 앉았던 자리가 더러워 다음날 앉을 분께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상을 매일 닦는다. 부끄럽지만 내 자리가 있을 땐 먼지가 보이면 닦았다. 예전 같았으면 말 붙일 일 없던 다른 팀 분들과 교류도 생겼다. 수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전에는 단체 회식이나 워크숍 정도 가야 뵐 분들과, 어쩌다 그날 옆 책상에 앉아계시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게 된다. 아무튼, 단점도 분명 있지만 어차피 바꿀 수 없는데 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냥 장점을 떠올리려 하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좋다.  



코로나가 터지며 많은 회사들은 반강제로 다양한 근무형태를 시험대에 올렸다. 결과적으로 꼭 정해진 시간(9 to 6)에, 정해진 내 자리에 출근해, 모두가 같은 공간에 모여서 일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근무형태가 불편하고 어지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산업의 특성상 위 근무방식을 도입하지 못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배제해야 하는 건 아니다. ‘The future of work is flexibility(일의 미래는 유연성이다- 구글 ceo)’라는 문장에 매우 공감하는데, 변화를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보려 노력하는 유연함이 필요한 시대다. 변화의 흐름이 거세다면 타이밍의 문제지 언젠가는 바뀔 거니까.


나 역시도 어디서, 어떤 자리에서, 언제 일하든 간에 업무효율을 최대치로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마치 아무데서나 무럭무럭 잘 자라는 식물처럼, 환경 탓하지 않고 아무 곳에서나 최대치의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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