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네 살. 자의식이 강하게 묻어나는 첫 문장이지만,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겠다. 서른넷, 그것도 다섯 달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는 살림을 꾸리고 일상을 안전하게 유지하는 집안일의 숭고함을 깨달았다. 두 달 전, 작은 아파트 하나를 계약하며 본가로부터 독립했다. ‘독립’이라는, 어쩌면 거창한 단어 앞에서 나는 마냥 들뜨기만 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이것을 해결하면 저것이 문제였고, 저 문제를 넘어서면 또 다른 무언가가 발목을 잡았다. 마치 철도를 깔며 앞장서 길을 트는 공병이 된 기분이었다. “이사만 하자, 이사만 하자.” 회피 아닌 회피가 머릿속을 지배했다. 어찌 되었든 이사를 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사는 했다’—그뿐이었다.
조그만 살림살이지만, 그 안을 내가 원하는 것들로 하나하나 채워가는 과정은 예상외로 엄청난 만족감을 주었다. 삶의 아주 작은 결정일지라도 주체성을 갖고 결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인격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주체성을 경험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누군가의 배려와 보호를 받아온 수혜자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10년 전 서울에서 4~5년 정도 혼자 산 적이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독립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벌이는 턱없이 부족했고, 당시 월세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았다. 코딱지만 한 원룸에서는 먹고 자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리고, 바야흐로 2025년. 서른네 살이 되어 나는 진짜로 독립했다. 이사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7년 만에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건지, 좋은 글감이라도 던져주는 건지—하필이면 내가 이사한 해에 10년 만의 대중교통 노선 개편이 있었다. 덕분에 집과 회사를 연결하는 대중교통은 단 한 가지 노선뿐. 그 버스를 놓치면… (이하 생략). 본가에서는 어머니께서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다녔지만, 이제는 내가 직접 챙긴다. ‘챙긴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사실은 냉동 도시락을 데워서 용기에 옮겨 담는 수준이다. 도시락과 운동복까지 한가득 가방에 넣고, 나를 회사로 실어 나르는 유일한 녹색 버스를 탄다. 30분이 넘는 통근 시간은 어느덧 내게 또 다른 루틴이 되었다. 초반에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모닝 뉴스를 틀었지만, 지금은 버스에서 조는 모습까지 제법 직장인의 외양을 갖추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불 꺼진 공간이 아직도 낯설다. 에어팟을 빼고, 듣고 있던 팟캐스트를 스피커로 전환해 소리를 채운다. 집에서도 할 일은 쌓여 있다. 아침에 못한 정리, 빨래, 저녁 식사 준비와 설거지, 쓰레기 정리 등등. 내 라이프스타일은 단순해졌고, 다른 생각이 들어설 여유는 없다. 쉽게 말해, SNS를 켤 시간도 없다. 출근 준비를 마치고 누우면 어느덧 자정. 하루가 숨 가쁘게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빠짐없이 흡수하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가장 큰 난관은 끼니였다. 매 끼를 스스로 챙겨 먹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줄은 몰랐다. 허겁지겁 차린 밥상 앞에서 숟가락을 들고 나면, 식사는 20~30분이면 끝나지만, 그 뒤에 남는 설거지와 정리는 배로 느껴졌다. 허기보다 피로가 더 먼저 드는 순간도 있었다. 그럴 때면 문득 생각이 든다. 엄마는 이 모든 걸 어떻게 혼자 해낸 걸까?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런 질문조차, 한없이 철없던 나를 증명한다는 것을. 집안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땀의 연속이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삶을 견고하게 지탱하는 고요한 기둥이다. 그리고 그런 기둥을 하나씩 세워가는 지금,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밖에서의 나를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선, 먼저 안을 단단히 채워야 한다는 것을. 집 안을 돌보는 일이 나를 돌보는 일이고, 끼니를 챙기는 일이 내 존재를 지켜내는 일이라는 것을. 집안일은 그저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 제 삶을 단단히 일궈내는 일이다. 매일의 끼니를 채우고, 조용히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조금씩 나의 삶을 지어 올린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숭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