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는 서울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이방인 [명사] :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초록창에서 이방인을 검색하면 어학사전 탭에서 가장 상위에서 볼 수 있는 멘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영화가 하고 싶어서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나는 24살에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5년이 조금 안되는 시간 동안 그 곳에서 살고 그 곳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곳에서 돈을 벌면서 ‘살았는데’ 왜 인지 항상 서울에서는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서울에서 나는 대구라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인가?
이게 바로 ‘나의 실패’라는 주제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나는 서울에서 살아남기에 실패했다. ‘나의 실패’는 서울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처음에는 무작정 영화가 만들고 싶어 서울로 향했다. 대충 번화가인 홍대 근처에 원룸을 구했고 발품을 팔아 단편영화 스탭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스탭 바이 스탭으로 사람들을 알아가며 일을 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영화사에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되어 정규직으로 취직까지 하게 되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인간승리 하면서 서울생활에 어느덧 적응해 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을 내려가지 않는 주말이 늘어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집 근처 자주 가는 단골 카페와 반찬집도 생겼고 서울에서 따로 약속을 잡을 수 있는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처음 서울에서 올라와 2호선 당산, 합정 구간을 지날 때 보이는 한강뷰가 그렇게 좋았다.
제법 서울말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고 느끼면서도 지나가다 들리는 서울말이 왜 아직도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바쁘게 일을 마친 날이나 친구들과 쉴새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날에도 집에 돌아 가는 일은 어쩐지 쓸쓸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자부했는데 노동으로서의 나에게 다가오는 책임감과 어떤 무게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1년을 꼬박 다녔던 회사는 재정상태가 악화되어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고 나는 순식간에 다시 백수가 되었다. 확신을 가지고 상경을 했는데 졸지에 타지에서 다시 진로의 고민에 빠지게 된 것이다. 돈을 버는 일은 무조건 좋아하는 일이 여야 한다고 여겼던 사람인데 진로와 함께 진로의 기준까지 바뀌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나의 실패를 앞당긴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서울에서 시간을 마치 밀린 숙제라도 하는 것처럼 보낸 것 같다. 어쩌면 회사를 그만둔 순간에도 속으로는 고향에 내려가는 것을 미리 결정해두고 그럴듯한 이유를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단편영화 제작, 영화제, 영화사, 도슨트, 각종 아르바이트.. 내가 서울에서 표면적으로 나열 할 수 있는 나의 경력이다.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항상 나는 그 다음을 생각했다. 그 다음은? 서울에서 나로서 살지 않고 자꾸만 ‘이방인’이라 정의하고 살아 남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현재 내가 하고 있었던 일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거였다. 경제적 이유도 물론이거니와 ‘존버’하면 빛이 온다라는 고진감래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버텨서 괜찮아진다고 한 들 버티는 것이 능사였을까?
그래서 난 ‘실패’하기로 선택했다.
등신 같은 패배자 대신 후회없는 패배자가 되기 위해 택한 실패, 돌아올 곳이 있었기에 내 실패가 그럴 듯하게 포장될 수 있겠지만 도전하는 삶이 비로소 의미 있다는 뻔한 결론을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실패로서 배운 것 같다. 실패를 통해 경험을 배우는 가장 간단하지만 어려운 삶의 이치를 깨닫는 일에 성공했다.
나는 서울에서 살아남기에 실패했고 금의환향에 실패했지만 재도약에 성공했다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내 소식에 친구 몇몇은 ‘허무하다’라는 표현으로 반응했다. 당시는 붉어진 얼굴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서 혼자 정말 그런가? 라고 의심하고 반문했다.
결국 모든 질문을 뒤로 하고 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같이 살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 지난 날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래, 허무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 결국 내가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이니깐. 그러나 제자리 걸음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어릴 때 내가 상상하던 어른이 된 건 아니지만 29살 지금 나를 이루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다. 이 사실을 내가 확신하는 순간 어떤 안도감이 밀려 왔다. 적어도 나에겐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나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당시 만났던 사람들과는 대구에서도 영화 스터디를 만들어 즐기고 있으며 서울에서 알게 되어 절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도 생겼다. 에피소드로 소비하기엔 내 실패가 너무 소중하고 애틋해서 나는 우려먹을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서울에서 내가 느끼고 배웠던 것들을 써 먹을 것이다 ㅎㅎ
요즘 나는 전혀 다른 일로 돈을 벌고 영화는 딱 내가 좋아하는 만큼만 소비하고 즐긴다. 그때그때 볼 수 있는 영화를 보고 그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그러다 보면 마음 먹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내 범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제 나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디서든 잘살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혹 서울을 다시 찾아 2호선 당산-합정 구간에서 한강뷰를 다시 본다 하면 그 때의 감회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