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순수의 전조/윌리엄 블레이크

by 이강선


거의 매일 아침 혹은 오후에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갑니다. 때로는 봉제산, 때로는 까치산, 때로는 볏골공원, 때로는 노을공원, 혹은 비둘기 공원, 반환점은 다르지만 거의 동일합니다. 공원은 물론 빌라도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꽃과 나무를 심어놓았습니다. 단독 주택은 마당에 나무와 꽃이 심어져 있지요. 그러나 인위적으로 심은 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생화도 여기저기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지요.




오늘 산책에서 눈길을 끈 꽃들은 창포와 불두화, 고들빼기, 애기똥풀과 뽀리뱅이입니다. 물론 저희 집 마당에 있는 매발톱꽃도 빼놓으면 안 되지요. 지난주 보도를 뒤덮었던 쪽동백꽃잎은 흔적도 없습니다. 올려다보니 잎사귀만 푸르릅니다. 이팝나무 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모두가 순간이었던 겁니다.



오늘 새로 본 꽃은 방가지똥입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점이 ‘방가지똥 꽃의 시절’이라는 의미지요. 이 방가지똥꽃은 아침에 꽃이 피고 낮이면 진다고 하는데 이 풀의 잎사귀는 가시처럼 뾰족합니다. 이런저런 약효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요. 특히 암에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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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동네에 피는 야생화를 거의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언젠가 찍은 야생화가 정말 예뻤고 그 소박한 아름다움에 반했고 그래서 찍게 된 것일 겁니다. 그렇지요. 출발하게 만드는 힘은 동기입니다. 그러나 14년이 넘도록, 아니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까지 줄곧 야생화를 보면 사진기를 들이대게 만드는 것은 습관입니다. 처음에는 이름을 알기 위해서 무수히 책을 뒤졌습니다. 지금은 동네 야생화는 거의 알지만 그래도 혼동하거나 헷갈립니다. 다시 들여다보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어떤 일이건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힘은 바로 습관입니다. 20여 년이 넘도록 글을 쓰거나 책을 읽어오고 있는 것처럼 습관은 나를 만드는 하나의 특징입니다. 야생화의 생명력은 놀랍습니다. 시멘트 틈에서도 자라나니까요. 야생화의 생명이라고 해서 장미꽃의 생명보다 하잘것없지는 않습니다. 모든 생명은 그 안에 정수를 담고 있으니까요.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며

그대 손안의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시간 안에 영원을 담아라.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고 말합니다.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노래하지요. 손안에 무한을 담으라고 말하고 순간 속에 영원이라고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방가지똥 꽃은 외투 단추보다 살짝 큰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작지만 벌이 찾아오고 곤충들이 찾아옵니다. 모든 꽃이 하는 일을 방가지똥꽃도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방가지똥 꽃도 하나의 세계입니다. 우주의 이치가 들어있는 것이지요. 이 세계에 기여하는 그 일, 그러므로 블레이크가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고 노래한 것은 바로 이 우주의 원리가 아니었을까요. 방가지똥 꽃의 짧은 순간이 영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바로 이 손안에 무한을 쥘 수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순수라는 것은 바로 그 안에 정기가 응축되어 있는 것, 모든 존재하는 것은 시간과 생명의 본질을 담고 있으니 순수는 바로 존재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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