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진달래꽃/김소월

by 이강선


「진달래꽃」은 전 국민이 알고 있는 아주 익숙한 시입니다. 우리에게 진달래는 아주 익숙한 꽃입니다. 산 어디에나 틀림없이 진달래가 있습니다. 학창 시절 우리는 이 시를 교과서에서 배웠습니다. 시는 간단하고 리듬이 확연하기 때문에 외우기도 좋았습니다.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는, 연인과의 이별을 서러워하는 것으로 배웠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아픔을 하소연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더 아픔을 깊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말없이 고이 보내드린다고 하는 한편 꽃을 즈려 밟으라고 함으로써 오히려 축복하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기지요. 그렇기에 한국인의 정서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 꼽히고 그토록 칭송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진달래꽃」을 다시 읽을 때 아니 이 「진달래꽃」이 제 어머니와 연결되는 사건이 생기고 나자 막연하던 아픔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이별, 그리고 내려놓음이 제 마음속 깊숙이 내려앉아 있던 슬픔을 폭발시켰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들을 요양원에서 보내셨습니다. 거동도 어렵고 인지능력이 많이 퇴화되었던지라 매일 건물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어머니는 몹시 답답해하셨습니다. 아직 춥던 날, 요양원 주변에서 진달래꽃과 복사꽃을 몇 송이 꺾어다 드렸지요. 머리에도 꽂아드리고 거울을 보여드렸습니다. 몹시 좋아하셨지요. 그 꽃들을 빈 야쿠르트병에 담아 놓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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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간병인이 꽃을 발견하고 저 꽃 누가 주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많은 것들을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어머니는 제 이름을 대셨다고 합니다. 울컥했지요. 누구나 그러하지만, 어머니와의 관계에는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쌓여 있습니다. 아픔, 사랑, 그리고 그리움이 회오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부모님이 늙어 힘없어지는 것은 자식에게 주었던 사랑을 돌려받으라는 신의 의도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의 편의를 먼저 찾지요.



시적 화자는 떠나가는 임의 발밑에 약산 진달래꽃을 뿌리지요. 시에서의 진달래가 이별의 길을 덮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헌신이라면, 제가 어머니에게 드린 진달래는 삶의 마지막 길목에 선 어머니께 바치는 소소한 사랑이자, 어쩌면 제가 느끼는 안타까움과 무력감이었을 겁니다.



이 구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때의 기억이 밀려왔습니다. 야산에 들어가 진달래와 복사꽃을 꺾을 때 "나무야, 미안해. 우리 엄마 보여드릴 거니 참아주렴" 하고 속삭였던 제 마음속에는, 어머니의 늙음과 병에 대한 슬픔이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제 마음에 떠오른 감정에 '애틋함', '무력감', '간절함'이라고 이름을 붙여봅니다.



어머니는 몇 년 후 돌아가셨습니다. 죽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화자가"가시는 걸음 걸음 / 놓인 그 꽃을 /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라고 할 때는 자신의 아픔보다 님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내려놓는 마음이 확연히 드러나 있지요. 이 마음은 움직이지 못하던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그 고통의 길을 부디 가볍게, 평안히 건너시기를 바랐던 제 마음과 닮아 있었습니다.



「진달래꽃」은 이별과 놓아줌이 단순히 관계의 끝이 아니라 그 안에 깊은 사랑, 희생, 그리고 아픔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담겨 있음을 깨닫도록 해주었습니다. 제가 머리에 꽂아드렸던 진달래꽃 몇 송이가 이미 파킨슨병이 많이 진행되어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환한 기쁨을 드렸듯,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작은 마음과 표현들이 이별 후에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삶에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 거리를 두고 나의 변화를 지켜보기

* 나의 감정에 이름붙이기

* 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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