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어느 날 문득/정용철

by 이강선


어느 날 문득/정용철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잘 한다고 하는데

그는 내가 잘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겸손하다고 생각 하는데

그는 나를 교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그를 믿고 있는데

그는 자기가 의심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사랑하고 있는데

그는 나의 사랑을 까마득히

모를수도 있겠구나,


나는 고마워하고 있는데

그는 은혜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떠나기 위해 일을 마무리 하고 있는데,

그는 더 머물기 위해 애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벌써 잊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저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내 이름과 그의 이름이 다르듯,

내 하루와 그의 하루가 다르듯,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구나.




시가 참 담백합니다. 기교없는 이 시가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시인의 삶이 환히 보이는듯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 치과에 갔습니다.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문자가 왔지요. 택배 아저씨가 반품할 물건을 가지러온다는 문자였지요. 물건을 문 앞에 내놓으라고 씌여 있었습니다. 병원에 와있는데 어쩌지?


남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나갈 준비로 바쁜 게지요. 문자를 넣었습니다만 읽을지 안 읽을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 받지 않았습니다. 문자를 넣었습니다.


혼자 애타하면서 앉아 있는데 이내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사정을 설명했습니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으니 그대로 내놓으라고요.


치과 치료를 받고 앉아 있는데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반품 회수했다는 내용과 더불어 다음부터는 포장을 하지 않으면 회수 거부하겠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화가 났거나 기분 나쁜 것이 역력했지요. 알겠다고 답을 썼습니다.


그러고 나니 저도 기분이 좀 안좋았습니다. 그는 문자를 보내고 한시간도 안되어 회수를 하러 왔던 겁니다. 아무도 집에 없다면 어쩌려고 그랬을까요? 미처 준비가 안되었다면 어땠을까요? 하긴 그는 다음에 다시 오면 그만이었을 겁니다. 다시 문자를 보냈습니다. 병원에 와 있는데 문자를 받은 것이라고.


저도 참 찌질합니다. 알겠다고 답했으면 그만인데 다시 답을 보내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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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동네 어린이집


그는 나의 사정을 몰랐습니다. 나는 그의 사정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나의 사정을 몰라준다고 서운해 합니다. 그도 마찬가지였겠지요. '택배하는 나는 이렇게 바쁘니 물건을 미리 준비해주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생각하겠지요. 저는 병원에 가있었고 '그가 다시 시간을 소모하지 않도록 나름대로 애를 써서 준비했는데' 하고 생각한 것이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의 입장을 생각합니다. 상대를 배려하기가 어렵지요. 사업에서도 그러합니다만 함께 가야 하는 대상이기에 서로 한도내에서 양보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배려입니다만 그건 쉽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그 사실을 생각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나의 형제들도 그러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틀릴 수 있습니다. 나도 타인도. 그래요.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틀린 것만 보지 말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삶을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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