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명상/어떤 일이 일어나도/헬렌 니어링

by 이강선

어떤 일이 일어나도/헬렌 니어링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

농장 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그날을 살라.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

혼자인 경우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우라.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라.

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웃음을 찾으라.

모든 것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에 애정을 가지라.


『자연주의자의 밥상』에서



계요등. 까치산에서


헬렌 니어링의 이 글에서는 명상적 태도가 스며 나옵니다. 아니 거의 모든 글귀가 명상에서 나온 듯합니다.


하나씩 살펴보면 "근심 걱정을 떨치고 그날그날을 살라"는 명상의 핵심인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군요.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죠.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생각에 지나지 않고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일입니다. 역시 허상입니다. 그러니 근심과 걱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어떤 하나의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인내이자 나 자신에 대한 신뢰입니다. 즉 자애와 인내가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는 관찰 수행 태도입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깨어있는 의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모든 순간을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본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자연과 만나고 발밑에 땅을 느껴라"는 많은 명상 전통에서 강조하는 자연과의 일치를 보여줍니다. 자연은 우리를 현재 순간으로 데려오는 강력한 매개체입니다. 자연은 감각을 사용하는 일입니다. 즉 현존하는 방법이지요.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마음의 평정을 잃지 말라"는 불교의 소욕지족이나 도교의 무위자연과 같은 정신입니다. 복잡함을 덜어내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것이죠.


"농장 일이나 산책,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는 몸을 통한 명상, 즉 행선이나 작업 명상의 개념과 일치합니다. 역시 감각으로 현존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집중과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집중하지 않으면 그 일을 해낼 수 없으니까요.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는 연민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이 글은 일상 자체를 명상의 장으로 만드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명상은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깨어있는 의식으로 살아가고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명상의 자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녀가 명상을 했을까요? 아니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 두 사람이 명상을 했을까요?


헬렌 니어링을 검색하니 그녀의 가족은 신지학을 신봉했다고 합니다. 신지학의 상징에는 진실 이외의 종교는 없다고 적혀 있습니다. 다시 검색해 들어가니 ‘신적 지혜’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또한 부모들은 그 시대의 히피였다고 하는군요.


그녀의 삶에는 지두 크리슈나무르티가 보입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대변인이었고 한때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군요. 그 외의 것으로 채식주의자의 면모를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녀의 가정환경이나 족적을 더듬어볼 때 명상적인 태도는 그녀에게 아주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그녀가 명상을 수행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찾은 사이트에서는요. 그러니 앞서 명상적인 태도가 자연스러웠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명상이라는 어구는 없다 해도 헬렌 니어링이 살아간 방식은 명상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헬렌 니어링의 이 방식은 일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합니다. 게다가 오늘날의 명상이 자칫 빠질 수 있는 위험, 자신에 대한 집중보다 자연, 노동, 주고 돕기등의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엄연히 일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지혜보다 어떤 고차원으로의 의식 상승보다 또는 소명의식으로 무장한 삶보다 진실하기에 오히려 더 근원적인 면에 다가갔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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