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 둥근잎유홍초를 만났습니다. 매번 가던 코스 대신 다른 곳을 택했더니, 아주 약간 방향을 틀었을 뿐인데 못 보던 꽃을 만났네요. 하얀 별을 간직한 둥근잎유홍초입니다. 둥근잎유홍초는 잎사귀가 둥글어서 둥근잎유홍초입니다. 잎사귀를 거론했으니 또 다른 유홍초가 있겠구나 하고 추측하시겠지요. 네. 그렇습니다. 새깃유홍초라는 또 다른 꽃이 있습니다. 이 유홍초는 잎사귀가 새깃처럼 가느다랗습니다.
빌라로 가득한 주택가라고 해서 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야생화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지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언덕을 올랐더니 나팔꽃이 있는 곳에 이 야생화가 있었습니다. 어딘가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딘가 나무를 타고 오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닥에 수북하게 뭉쳐 있었습니다. 이 덩굴들은 계속 번져가는 중이었습니다. 허름한 빌라 건물 옆 공터가 있고 그 공터는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곳일 테고 그 옆 높은 언덕은 까치산 정상이고. 그러니 쓸모없다고 여겨진 곳이라 씨앗이 와서 자리 잡기 좋았을 겁니다.
공터에는 무엇이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무엇이건 자리를 잡을 수 있지요. 비록 시멘트로 발라진 곳이라 할지라도 씨앗은 아주 작은 틈 하나도 놓치지 않습니다. 씨앗이 그토록 작은 것은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작아야 자리 잡기 쉬우니까요.
마음도 그러합니다. 어느 하나의 가치관에, 어느 하나의 믿음에 온통 사로잡혀 있다 할지라도, 몇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경험에서 혹은 배움에서 비롯한 믿음이 나를 시멘트처럼 굳건하게 포장했다 할지라도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 찾아오면서 어디에선가 틈이 생겨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틈이.
틈이 자라나면서 씨앗이 그 안에 자리를 내리지요. 그러기에 루미는 상처란 빛이 들어오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상처가 없으면 내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부가 보이지 않으면 내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엑스레이와 같은 의료도구가 발명되기 이전 우리의 몸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이요.
시는 의료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지요. 시는 영혼을 들여다봅니다. 시는 꽃 하나에서 우주를 보고 시는 모래 한 알에서 시간을 봅니다. 바닷가 게는 모래를 먹고 그 안에 있는 양분을 섭취하면서 모래공이라는 작품을 만들지요. 무수한 모래공은 파도가 오면 힘없이 스러집니다. 게의 삶은 모래공으로 이뤄져 있되 게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시는 모래공과 상처와 우주를 동시에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영혼 또한 그러합니다.
어제 시명상 시즌 2가 끝났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8편의 시를 읽었고 ‘내 영혼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내면을 만난 시간, 삶과 마음을 들여다본 시간등 여러 표현이 나왔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울림이었습니다. 그것은 씨앗이었습니다. 그것은 시라는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아직 몹시 덥지만 둥근잎유홍초가 피기 시작했다는 것은 가을이 오고 있다는 표지이듯이 나의 영혼은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내 안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곳에서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미 여러 시작을 거쳐왔으니까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내 안의 나는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