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성에서 영성으로/윤동주의 서시
일상성에서 영성으로: 윤동주의 서시
서시/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는 언제 죽는지 알 수 없습니다. 평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금 이 상태가 영원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죽음이 일상에 편재해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필 스터츠는 매일 아침 ‘죽는 날’을 떠올리라고 권합니다. ‘죽는 날’을 기억한다면 그날 하루를 알차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차게 산다는 것은 나답게 사는데 집중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답게란 내 삶의 목적, 내게 주어진 소명을 향해 가는 일입니다.
윤동주의 「서시」는 우리가 죽음을 기억하고, 그 안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삶의 목적을 다하는 영성적 여정을 탐구하고자 하는 소망을 말합니다. 평범한 시어를 사용하되 삶의 고뇌와 순수한 다짐을 담아내며, '하늘', '잎새', '별'과 같은 흔한 이미지를 상징으로 승화, 일상성에서 영성을 길어올리는 경험을 하도록 만듭니다. 원래 ‘서시’란 책의 첫머리에 앞말을 대신하는 시로, 그 글의 철학이나 방향을 요약해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 화자가 이 시를 「서시」라고 이름 짓고 그 첫머리에 ‘죽는 날’이라고 언급한다면, 죽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서약일 것입니다.
화자는 처음부터 ‘하늘’과 ‘부끄럼’을 언급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소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를 내려다봅니다. 하늘은 오고 감이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며 늘 내려다보고 어디에 가나 존재하는 곳, 그렇기에 하늘은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집니다. 옛날부터 조상들이 하늘을 우러러 제사를 지내고 하늘을 우러러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은 바로 하늘이 인간을 초월한 존재, 혹은 인간 너머의 존재가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 초월적인 존재인 하늘은 달리 말해 나의 양심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아는 존재는 나밖에 없으니까요. 하늘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렇다면 그런 삶은 극히 맑은 삶일 겁니다. 부끄러움이란 내 존재에 대한 수치심입니다. 내가 여기 존재하면서 나다운 삶에 대해 어떤 죄를 짓지 않았는가 하는 두려움입니다. 부끄러움을 만드는 일은 흔들림입니다. 내 약속을 더럽히는 그 일은 편안함에 대한 갈망이기에 소명에 대한 시련입니다.
화자는 ‘잎새를 건드리고 가는 아주 미약한 바람’이라는 표현으로 그 시련의 정도를 나타냅니다. 죽는 날까지라는 준엄한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 듯한 섬세함입니다. 당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치하에 있었습니다. 그는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식민 사상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수치심'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사상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별을 노래한다는 구절과 썩 어울립니다. 별을 노래한다는 것은 별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별을 바라보는 이는 순수한 이입니다. 별을 바라보는 이는 목적과 소명이 있는 이입니다.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길을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이입니다. 결과적으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걸어가겠다는 결의입니다. 자기 초월을 위한, 진정한 자아실현을 위해 걸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은 여전히 바람에 스치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시련이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별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람은 스쳐갈 뿐입니다. 오늘 밤은 곧 어젯밤이 될 겁니다. 어디를 가건 내 약속을 지킨다면 내가 있는 곳마다 내 약속이 이루어지는 진실이 될 것입니다.
시는 ‘죽는 날까지’에서 시작하지만 ‘오늘 밤에도’로 끝납니다. 마지막 날에서 시작해 현재로 끝나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시작했던 시의 종점이 오늘 밤으로 끝난다는 것은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러하겠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즉 매일 밤 새롭게 갱신되는 삶의 리듬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수처작주란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입처개진이란 서 있는 곳이 모두 주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오늘이라는 현재를 걷는 한, 삶은 진리가 실현되는 장소인 것입니다. 화자는 과연 그러했습니다. 그가 스스로에게 내세운 서시를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당신의 수처작주 입처개진은 어떠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