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이 익기까지

by 이강선


주방장의 소주, 시인의 잉크가 되다:영혼을 치유하는 시 쓰기




40년간 음식점 주방장을 하던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손님은 그의 생계를 잇게 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속이 썩어 문드러지는 일이 생겨도 “감사합니다.” 를 되뇌었습니다.


그렇게 40년을 살고 나니 알코올 중독이 남았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소주 다섯 병씩을 마셔댔고, 보다 못한 아내가 그를 정신병원에 보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그에게 이렇게 마시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배낭에 쌀과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반찬 한 두어가지를 넣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부산에 살던 그가 강원도 고성까지 3개월에 걸쳐 걸었습니다. 이후 34킬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국내의 산이란 산은 안 가본 곳이 없습니다. 산이라야했습니다. 술이 없는 곳이어야 했으니까요. 산속에서 술에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고 소리 질렀습니다. 그러던 그는 이제 책을 네 권 출판한 시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는 아직도 우직합니다. 일주일에 도합 네 번 시교실에 갑니다. 세 군데의 시쓰기 교실, 한 군데의 시 낭송 교실입니다. 그러나 부산의 집을 떠난 지 6년, 아직도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울의 딸 집에 삽니다.


우리가 만난, 2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게 짧다면 짧습니다. 그는 눈에 띄는 수강생 중의 한명이었습니다. 흰 수염, 억센 부산 사투리, 때로 그는 자신의 몸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삼십 대만큼이나 멋진 몸이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시 낭송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었습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더 오래 시 낭송을 해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규 멤버였고 나는 어쩌다 한번 시 낭송 수업에 나갔으므로 그의 변화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시 낭송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했고 시극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 그러는 동안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아직 사투리가 남아 있지만 그의 시 낭송은 좋아졌습니다.


그는 대체 왜 그렇게 시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그런 그를 만나 두 번 인터뷰를 했습니다. 작년에 한 번, 그리고 1년 2개월이 지난 올해, 바로 오늘입니다. 그러고는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시를 쓰는지를, 하루에 시를 한 편씩은 꼭 쓴다고 합니다. 늘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적는다고 합니다. 남들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만 그는 노트에 시를 적고 들여다보고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시 소재를 찾느냐고 물으니 삶 자체가 시의 소재라고 합니다. 그에게 그런 물음을 던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터뷰하는 동안 그의 얼굴은 빛났고 배를 모는 선장처럼 기품 있었습니다. 그는 수염을 기르고 있었으니까요.


왜 시를 쓰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는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쓰고 싶어서 쓰지만 자신이 왜 시를 쓰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어느 누구도 그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를 쓰고 합평을 하고 그리고 그가 쓴 시를 고쳐주기는 했지만 무엇이 달라지는지는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상세하게 질문의 범위를 좁혀가자, 즉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서 시 읽기와 시 쓰기가 어떻게 다른지를 비교해서 물었습니다.


1년 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날 머리가 꿈틀하고, 손가락이 꿈틀해서 그냥 적어봤습니다."

이것은 뇌과학적으로 놀라운 증언입니다. 중독에 절어 있던 뇌가, 생존을 위해 '쓰기 회로'를 스스로 개통하는 순간의 생생한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를 쓰기 시작한 후 자신이 '착해졌다, 맑아졌다'라고 했지만, 저는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달라진다는 변화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왜 착해졌는지 왜 맑아졌는지 그것을 알고 싶었습니다. 1년이 지난 오늘 시를 쓰고 난 후의 느낌을 묻자 그는 시를 쓰고 나면 후련해진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그의 눈이 반짝했습니다. 평생토록 자신의 말을 억압해온 그였습니다. 억압은 폭발의 징조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억압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술을 마셨던 것이지만 중독에서 깨어난 어느 날부터 제정신이 돌아왔고 아내에게 그처럼 미안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시로 써서 보낸다고 했습니다.


뒤돌아가는 그의 배낭에 두 개의 인형이 달랑거렸습니다. 인형은 여느 키 링처럼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팔뚝만큼이나 큰 총천연색의 인형이 두 개, 그는 그 인형이 자신의 손자와 손녀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가 손녀를 보지 못하게 하니 이 인형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운동화는 빨갛거나 노랗거나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도무지 고를 수 없었던 색상,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미쳤다는 표시를 하면서 수군거린다고 했습니다. 그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해주었습니다.


그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그는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토해 냄이 시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가 토해내고 그리고 그 글을 다듬기 때문입니다. 시 쓰기는 그에게 목소리를 돌려주었고 시 쓰기는 그에게 표현을 돌려주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일 것입니다.


자신의 표현을 가진 그는 이제 운명의 키를 잡은 선장이 되었습니다.



대추 한 알 - 장석주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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