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If—) 러디야드 키플링 / 이강선
주변 모두가 이성을 잃고 너를 탓할 때
너만은 냉정을 지킬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너를 의심할 때 자신을 믿으면서도
그들의 의심마저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다면,
기다리되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거짓을 당해도 거짓으로 맞서지 않으며,
미움을 받아도 미움으로 갚지 않고
그러면서도 선한 척도, 너무 똑똑한 척도 하지 않는다면,
꿈을 꾸되 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생각을 하되 생각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다면,
'승리'와 '재난'이라는 두 사기꾼을 만나
그 둘을 똑같이 대우할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을 악당들이 왜곡하여
어리석은 자들을 옭아매는 덫으로 써도 참아내고,
네 평생을 바쳐 이룩한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도
몸을 굽혀 낡은 연장으로 다시 지을 수 있다면,
네가 따낸 모든 승리를 쌓아올려
단 한 번의 승부에 걸고,
설령 다 잃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며
잃은 것에 대해 단 한마디도 내색하지 않는다면,
심장과 신경과 힘줄이 다 닳아버린 뒤에도
네 몫을 다하도록 그들을 부릴 수 있다면,
남은 것이라곤 "버텨라!"라고 명령하는 의지
하나밖에 없을 때에도 끝까지 버틴다면,
군중과 이야기하면서도 덕을 잃지 않고
왕과 거닐면서도 서민의 마음을 놓지 않는다면,
적도, 사랑하는 친구도 상처 입힐 수 없도록 하고
모두를 귀히 여기되 누구에게도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다면,
가차없는 1분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한
60초로 빈틈없이 채워낸다면
그렇다면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이 너의 것이요,
무엇보다, 아들아, 너는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게다!
노르웨이의 전설 트롤을 다룬 영화에서, 성 올라프의 전설을 평생 연구해온 노학자 에스테르 요한네 틸레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답은 틀 안에 있다고. 그녀는 성당 안에 있다고 전해지는 성 올라프의 무덤을 일생 동안 찾아다녔지만, 끝내 그것을 확인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녀가 도달한 결론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해답을 찾아 틀 밖으로, 관습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정작 답은 이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트롤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자연을 함부로 다뤄온 인간에게 자연이 응답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에스테르의 말은 상징적입니다. 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이미 발 딛고 서 있는 자리, 그 안에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답은 늘 밖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몸은 안에 두고 있으면서도, 생각은 언제나 바깥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든 이들이 왜 자신을 떠받치고 있는 사유, 특히 동양의 사유로 되돌아가는지를 이제야 이해하게 된 셈입니다.
키플링의 시 「만일」은 이 말과 정확히 겹칩니다. 이 시는 바깥으로 나아가라고 부추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지탱하는 조건과 내적 질서를 하나씩 점검하라고 요구합니다. 답은 늘 그 안에 있습니다. 에스테르의 말은 이 깨달음과 닿아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인 ‘만일’은 조건을 뜻합니다. 조건이란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먼저 충족되어야 할 정황입니다.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만일 이렇게 할 수 있다면’이라는 조건을 제시한 뒤, 그렇다면 결국 너는 진정한 어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이 시는 어른이 되기 위한 조건을 묻고 있습니다.
오래도록 시인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 훌륭한 시를 외면해왔습니다. 평상시 시인에 대한 지식이 시를 흠집 낼까봐 경계해왔으면서도 그러했습니다. 자신의 말을 스스로 거부한 셈입니다. 그러나 구전 서사에 관한 글을 쓰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시각의 좁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말과 문자는 다릅니다. 말의 힘은 그 당대에 있지만 문자의 힘은 기록이 존재하는 한 계속됩니다. 물론 시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이 시를 지은 시인, 러디야드 키플링은 식민주의자, 제국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에 대한 바람마저도 식민주의적 시각을 가졌을까요? 시를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그의 아들에 대한 소망은 누구 못지않게 고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시 자체가 균형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요.
우리는 자신의 아이가 세상을 고르게, 바르게 살아가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기를, 삶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실패했더라도 일어서기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기를 바랍니다. 달리 말해서 키플링의 이 시는 제가 아이들에게 하고픈 말을 담고 있었습니다. 편견은 좋은 시를 외면하도록 만듭니다. 그건 제가 그를 세력을 가진 자, 힘을 가진 자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문자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도구였습니다. 흥분을 식히고 차분히 생각하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문자를 지닌 민족은 문명화된 민족으로 여겨졌고 구전 서사를 지닌 민족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구전은 격동시키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도록 만들거나 그 반대, 감정적으로 몰아갔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연설을 잘하는 이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연설이 만들어낸 폐해 역시 기록합니다. 히틀러는 연설을 잘했고 사람들을 격동시켰기에 엄청난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는 악한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광기와 감정적 휩쓸림을 낳았습니다. 고대의 음유시인들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말을 전했듯이.
그러나 키플링의 시 ‘만일’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옵니다. 이 시는 "만일 네가 이것을 할 수 있다면(If you can...)"이라는 차분하고 조건적인 문장 구조를 통해 독자에게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유를 요구합니다. 이 시는 우리를 격동시키는 대신, 주변 모두가 이성을 잃을 때도 '냉정을 지키라'는 고도의 자기 통제를 주문합니다.
이 시의 절정은 마지막 구절에 있습니다.
"가차 없이 흐르는 1분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한 60초로 빈틈없이 채워낸다면,"
시간이 아무리 빠르게 흐르고 짧게 주어진다 해도, 그 순간을 열정적으로 그리고 충실하게 살아간다면이라는 이 구절은, 과거나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머무르라는 요청입니다. 다시 말해, 키플링이 말하는 어른의 조건은 성공이나 명예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책임, 곧 현존의 태도입니다.
시인은 외부의 평가나 소란이 아닌, '자신이 얼마나 충실하게 시간을 밀도 있게 채웠는가'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기준으로 삶의 승패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인의 시대적 배경(식민주의)을 넘어,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자기 절제와 책임감을 가르칩니다.
편견은 감정에서 오지만, 훌륭한 시는 그 편견을 넘어 문자가 담보하는 영원한 진실을 전달함으로써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키플링의 시 '만일'은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개인의 도덕적 중심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냉철하고도 따뜻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들이 잘 살아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시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