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늘 여러 개의 모습이 있습니다. 여성성이거나 남성성으로만 표현할 수 없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인간은 만나는 이마다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 모든 모습을 꺼내게 만드는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라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는 자연 앞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그저 고요해집니다. 자연의 힘을 알고, 그 경이로운 모습들을 알고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중장비를 들고 자연을 정복하겠다고 덤비는 이들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그들마저도 한겨울만큼은 피합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계절 앞에서 인간의 힘이 도무지 통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연일 ‘한파 권고’라는 이상한 표현이 뜹니다. 한파 권고라니, 웃지 않을 수 없는 말입니다. 원래 의도는 한파가 몰아닥치니 주의하라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목도리로 칭칭 감고 마스크를 써서 눈만 내놓고 다닙니다. 책상 앞에 앉으면 발이 시려 두툼한 실내화를 신어야 하고, 의자 위에서는 담요를 둘러야 합니다.
그러나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맑습니다. 문득 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어 마치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늘을 올려다 보면 어찌나 깊고 청청한지 눈도 밝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내 얼어붙는 바람에 곧 문을 닫아야 하지만 말입니다.
그러고 나면 겨우내 쌓인 생각들이 보입니다. 종이뭉치들, 말들, 그리고 실수들. 이제는 쓸모를 다한 생각들입니다. 생각은 어찌도 이리 많은지요. 생각을 피워 올리느라 수많은 책을 읽고, 수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생각들의 무게를 깨닫습니다.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오가며 쌓아두었던 생각들은 때로는 지구 전체보다 크고 무겁고, 때로는 좁쌀 한 알보다 작고 먼지 한 톨보다 가볍습니다.
웬델 베리는 「정화」에서 겨울 동안 자신이 했던 일들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고
찬사를 갈망했다
이 고백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 내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에서 살아 있다는 것보다 더 큰 행운이 어디 있을까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이미 무한한 행운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행운을 잊은 채, 스쳐 지나가는 환영에 마음을 빼앗기고 두려움에 떨며 불안 속에 웅크려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것들, 그것들은 내 생명에서 나온 것이 아닌 소음들이었습니다. 가까이 와 내 것인 양 똬리를 틀려 했던 것들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찬사를 갈망하느라, 나를 둘러싼 이 경이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것들은 쓸모를 다했습니다. 실상 쓸모를 다했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언제까지고 과거의 것들을 껴안고 있으니까요. 이제 깨달은 이는 그것들을 대지에 파묻습니다. 파묻음으로써 현재로 돌아옵니다.
파묻음은 단절의 행위입니다. 그 단절은 과거의 어둠에 대한 것이고, 과거의 무력함에 대한 것입니다. 과거는 단지 지나간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합니다. 구덩이를 파고 묻으라고. 묻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겠다는 뜻이며, 다시 꺼내어 스스로를 소란스럽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입니다. 망각 속으로 밀어 넣는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대지는 죽음의 대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정화입니다. 그러므로 묻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 3주가 흘렀습니다. 자취를 더듬다 보니, 지난해의 고민과 생각들은 이미 묻혔거나 침잠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고요 위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가만히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