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말/ 최윤경
말 없음 가운데
눈으로 대하는 언어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아직은 잘 몰라도
꽃 지고 난 후
검은 씨앗의 눈으로
말할 수 있겠다
새싹 틔우고 난 후의
초록빛이라고
『마른 꽃잎이 주는 생각』 문학의 전당 2020
4월 중순입니다.
사방은 초록으로 넘쳐납니다. 단 그 초록은 아주 연합니다. 그 초록은 여름의 익숙하고 억센 초록이 아닙니다. 낮아진 빛 속에서 버티던 겨울의 둔한 초록도 아닙니다. 깨끗하고 연연한 초록입니다.
말하다 보니 초록에도 아주 다양한 층위가 있다는 생각이 다시 듭니다. 우리가 첫 봄에 마주하는 초록은 늘 그런 상태입니다. 금세라도 부러지거나 스러져 내릴 듯한 초록입니다. 가슴을 적시지만, 동시에 다른 색에 쉽게 물들어 버릴 것 같은 불안한 초록입니다.
그 초록을 볼 때마다 우리는 시작을 떠올립니다. 처음을 떠올립니다.
화자는 그 초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대하는 언어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아직 잘 모른다”고 말합니다. 아직 그 감각이 언어로 완전히 옮겨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의미는 다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새싹이 막 돋아난 순간의 초록을 떠올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이고, 시작이며, 아직 완전히 형태를 갖추지 않은 생명의 상태입니다.
씨앗은 꽃의 끝이 아닙니다. 씨앗은 땅속에서 겨울을 버티고, 다시 봄이 오면 새싹을 밀어 올립니다. 그것이 해마다 되풀이됩니다. 그러니 씨앗의 눈으로 말한다는 것은, 한 번의 소멸을 통과한 자리에서 다시 처음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처음을 첫 초록이라고 알아차리는 일은 어쩌면 그렇게 한 번 꽃이 지고 난 이에게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화자는 고심 끝에 어휘를 골라냅니다. ‘처음’과 정확히 대응하는 이미지가 바로 ‘새싹을 틔운 뒤의 초록’이라고 본 것입니다.
새싹을 틔운 후의 초록은 우리가 세계를 처음으로 감각하던 순간의 상태와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저 초록이라면 아마도 아기의 표정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정, 순수하게 드러나는 웃음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삶의 가장 낮은 층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밑바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아직 말로 올라오지 않은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핵심의 층입니다. 그렇기에 처음은 아름답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가슴이 저릴 정도로 연약합니다.
당신이 잊어버린 그 초록은, 그 처음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오늘 만나는 첫 초록에, 막 올라온 단풍나무의 고사리 같은 잎사귀에 시선을 잠시 두어 보시지요. 말간, 당신 자신의 처음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