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

범부채와 벌거벗은 나무

by 이강선

오늘은 도서관 옆에서 다소 얼쩡거렸습니다. 지난주 도서관에서 나오면서 범부채를 보았고 오늘 그 범부채를 찍을 요량이었거든요. 감사하게도 범부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범부채가 발이 달려서 도망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도에 피어 있어 혹시나 누군가 잘라내버리지 않을까 두려웠던 겁니다. 그런 일이 일쑤 일어납니다. 야생화니까요. 야생화란 그저 풀일 뿐이지요.


범부채는 붓꽃 과입니다. 새삼 깨달은 일이지만 잎사귀가 두텁고 넓적하더군요. 그런데 왜 범부채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요? 범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꽃에 범의 무늬가 있습니다. 꽃잎은 주황색이고 그 꽃잎에 점점 무늬가 범의 가죽처럼 흩뿌려져 있는 것이지요. 이 꽃에는 예사롭지 않는 기품이 있습니다. 주황색 꽃잎에 역시 검은 점이 흩뿌려진 참나리와 유사하지요. 참나리꽃이 크고 화려한 것과는 달리 범부채는 다소 소박합니다.





범부채



목덜미에 뜨거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것을 느끼면서, 대신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것을 다행스러이 여기면서 범부채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긴 나다니기에 썩 좋은 날은 아니었지요. 눈부실 정도로 환한 날이었습니다. 눈부신 만큼 더운 날이었지요. 요즘은 버스 기다리는 일이 옛날만큼 고역스럽지는 않습니다. 정거장마다 지붕을 갖춘 구조물이 있어 그 아래서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지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랬음에도 지면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발바닥을 태워버릴 듯 뜨거웠습니다. 이런 날 버스 안은 마치 천국처럼 시원합니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지요.


마침 자리가 비어 앉아서 가는데 문득 나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플라타너스 나무였지요. 희디 흰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자작나무보다 더 고운 속살이었지요. 저 아름다운 수필, 「산정무한」의 저자가 요즘의 이 나무를 보았다면 자작나무 대신 버즘나무라고 적지 않았을까요? 휴대전화를 들이댔습니다. 그러느라 몸을 뒤로 돌렸지요. 다행히 버스의 속력은 느렸고 덕분에 흰 버즘나무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제 뒤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궁금했나 봅니다. 무엇을 찍는 거냐고 물어왔습니다. 당신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찍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플라타너스가 벗었기에 그 모습을 찍는다고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를 가리켰습니다. 그 길의 가로수들은 모두 플라타너스인지라 다들 옷을 벗고 있었습니다. 그중에 이 플라타너스가 유독 희었기에 그 나무를 찍었던 것이지요.





옷을 벗은 플라타너스



제 설명을 들은 아주머니의 눈이 커졌습니다. 수십 년간 같은 곳을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저기 플라타너스가 있다는 사실도, 그 플라타너스가 껍질을 벗는다는 사실도 몰랐다는 것이지요. 시장에서 집으로 일터로 다니느라 머릿속에는 그 생각으로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터에서 시장으로, 그리고 집으로 뺑뺑이 하는 그 일이 어찌나 고단한지 때로는 시장에 가고 싶지 않지만 식구들에게 반찬을 해주어야 하니 할 수 없이 기운을 낸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크게 부자가 되고자 함도 아니고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왜 이리 바쁜 건지. 아주머니는 분초를 쪼개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잘 살고싶어서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시간을 쪼개어 일을 하지만 이제는 지친 나머지 이 동네를 떠나면 나을까 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러합니다. 우리는 늘 사는 일로 바쁩니다. 다음 할 일로 바쁘고 그 일이 해결되면 또 다음 할 일로 넘어갑니다.. 미래가 온통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먹고사는 일이 끝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요? 잘 살았다는 흐뭇함?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렸으니 풍성하다는 뿌듯함?


아주머니는 화곡 본동 시장에 가지만 그곳이 언제 변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셨습니다. 그저 바뀌었나 보다 생각할 뿐이라는 것이었지요. 언제인가 시장에는 입구에 구조물이 생겨났고 가게는 청결해졌으며 노점도가판대의 모습을 확실히 갖추었고 광고도 제법 하게 되었지요. 그처럼 선명한 변화가 생겼는데도 아무런 의의도 없었던 겁니다. 그것이 보통 사람의 모습입니다. 열심히 아주 바쁘게 살지만, 쉴 틈도 없이 바쁘지만 결과는 허망한.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리는 일만으로도 나의 일상은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힘든 생각으로 고통스러운 생각으로 걱정으로 시달리지 않고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일상을 풍성하게 만드는 방법이지요. 사실, 생각을 하지 않는 일은 오히려 생각을 더 깊게 만듭니다. 범부채를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찍고 플라타너스를 알아차리고 그리고 화곡동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길의 아침을 찍는 일, 그런 일들은 시간 낭비가 아닌 오히려 시간을 더 값지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한걸음 물러서 나를 들여다보는 방법입니다.


그건 에너지를 채우는 일인 동시에 나의 근원을 만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삶이 깊어지는 일이지요. 아주머니는 오늘 내가 귀인을 만났구나라고 하시더군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이 제 말에 귀를 기울여주셨기에 할 수 있었던 말이었습니다. 아주머니가 필요로 했기에 받아들이셨던 거지요. 저는 아마도 지금처럼 살아갈 겁니다. 큰 변화 없이 읽고 쓰고 그리고 관찰하고 그렇게 살아갈 겁니다. 그리고는 가끔 이런 말을 하겠지요.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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