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인도 시인 까비르는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출발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매 순간 새로 출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간이란 말 그대로 순간입니다. 다른 단어로 찰나라고 하지요. 순간은 통과가 즉각적인 그래서 매우 짧은 시공간, 또는 지점으로 정의되지요. 말 그대로 순간은 매우 빨리 지나갑니다. 순간은 그다음 순간을 향하여 이내 달려 가버리고 그 순간을 놓친 우리는 하릴없이 우두커니 서 있음으로 또 다른 순간, 지금을 놓쳐버리고 맙니다. 물론 그 순간이 단순히 시간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삶의 어느 시기 혹은 어느 기간을 순간으로 기억하지요. 누군가를 만났던 순간, 무언가를 했던 순간. 그것은 시간적으로는 길었다 할지라도 내 기억에서는 그 의미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정호승. 세계사 1989.
후회란 하지 않을수록 좋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돌아보지 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후회는 하지 않되 성찰을 하는 거지요. 성찰은 반성하고 살피는 일을 말합니다. 이는 앞으로의 삶, 행동양식을 새로이 하기 위함입니다. 그저 안타까움에 잠겨 있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자 하는 것이고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함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아무래도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가득한 듯합니다. 더 열심히라는 단어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공감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무언가 할 때 그 일의 의의를 알지 못하기에 최상의 것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편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기에 그저 이번 한 번만으로 끝내고 말 것으로 생각하기에 마음에 두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정보에 밀려가기 때문입니다. 나의 욕심 많은 두뇌는 놓치면 내 것이 안 될 것 같아, 놓치면 나만 뒤떨어질 것 같아 불안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지 잘 살지도 못하면서 썩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온갖 정보를 섭렵하고 온갖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바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순간의 절정을 누리지 못하고 어서 다음 순간으로 건너뜁니다. 그리하여 겉만 훑어보고 보내버리고 대충 말을 하고 지나가버리고 대충 듣고 흘려버리며 대충 사랑하며 존재합니다. 그렇게 살다가 결국 자신의 삶도 대강 살아갑니다. 대강 일하기에, 열정을 쏟지 않기에 그런 순간이 모여 내 삶이 되는 것이지요.
만다라
최선을 다해 사랑하면 그 사랑이 끝나도 쉽게 잊는다고 합니다. 아니 미련이 없다고들 하지요. 그런 이들은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온몸을 다해, 온 정열을 다해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왜 우리는 그다지도 열심을 강조하는 것일까요? 열심은 그 일의 끝까지 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정열은 그 단계의 비밀을 열어 보여주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은 늘 스스로 경계를 두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거리를 두고 미적거리기 때문입니다. 더 좋은 것을 기다리느라, 더 나은 기회를 찾느라 지금 내 앞에 놓인 기회를 잡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혹은 그저 살아내기 버겁다는 생각에 짓눌린 나머지 허덕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늘 거리를 두는 이는 자신을 부어 넣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계를 넘으면 마음을 바꾸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는데 그 경지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모든 순간에 꽃을 피워냈다면, 어떤 일을 위한 모든 순간에 꽃을 피웠다면 그는 아마도 유감이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