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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선 Jul 29. 2024

시명상/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외/


어제 동화구연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흥미진진한 대회였지요.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각각의 사람은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 안에는 각자 최고의 순간이 있고 세계 안에는 각자 고뇌의 시간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 두 시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알 때 일부를 알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를 만날 때 당시의 조건과 상황과 역할에 따라 그가 자신을 내보이는 대로 보고 믿고 그렇게 생각할 뿐으로 그가 보이지 않는 모습을 알 도리는 없습니다. 그가 읽은 책들, 그가 만난 다른 사람들, 그가 알고 있는 세계는 비밀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옙투센코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은 그가 지닌 세계들이 죽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에브게니 옙투센코


 


누구든 죽을 때 홀로 죽지 않는다.

그가 맞는 첫눈도 그와 함께 죽는다.

그의 첫 입맞춤, 그의 첫 싸움......

모든 것을 그는 데리고 간다, 모두 함께.


그가 읽은 책들, 건너다닌 다리들은 남는다.

그림을 그린 캔버스와 자동차들도.

그렇다, 많은 것이 남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것은 정말로 우리를 떠난다.


그것이 이 가차 없는 유희의 규칙이다.

사람들이 죽는 것이 아니라 세계들이 죽는 것이다.

우리는 실수 많고 세속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알았는가.


-중략-



『마음챙김의 시』 49-52쪽. 류시화 엮음. 수오서재 2020.



우리도  바쁩니다. 그가 보여주지 않은 세계까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제 읽은 책이 무엇인지, 어제 한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책을 읽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런 것까지 알아서 무얼 할까요. 


사실 나도 나를 모르니까요. 아마 오늘도 나는 서너 가지 일로 바쁠 겁니다. 살림을 하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그리고 약속까지 있어 내 일정만으로 벅찹니다. 그렇게 여기겠지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먹고사는 일, 그것이 나의 삶을 만들어냈고 앞으로도 만들어갈 것이니까요. 나의 삶에 집중하면서. 때로는 너무 벅차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 


그 내가 바로 그입니다. 그 내가 바로 그들이고 누군가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들이 여기저기에 있는 것이지요. 아니 세상은 그러한 나들로 가득차 있어 그러한 우리가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거지요.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살아가되 서로를 지탱하고 버티어주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서로의 세계로 풍성해지고 확장하며 초월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정현종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방문객/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중략-


『광휘의 속삭임』. 문학과 지성사, 2008.


 


누군가, 지금 현재 살아 있는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온다는 것이지요. 그가 과거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계를 거쳐왔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가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애써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여기 있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세계를 거쳐왔듯 그 또한 그처럼 많은 세계를 거쳐왔고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여기에서 내가 그를, 그가 나를 만나고 있지 않겠지요. 




화곡동의 털별꽃아재비, 아주 작은 꽃



그렇게 만난 누군가 죽는다면 그건 그를 이루었던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죽음학자 최준식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800생을 거쳐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엄청난 숫자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 있기 위해 799번을 살았다니요. 그의 계산에 의하면 그 삶은 약 5만 6천 년입니다(『카르마 강의』 85쪽). 중요한 것은 800번 동안 만난 세계입니다. 799개의 세상입니다. 실제로 내가 거쳐온 생이 799번은 아니라고 해도 그만한 숫자의 세계는 거쳐왔을 듯합니다. 그러니 그만한 숫자의 세계가 나를 이루고 있다는 의미지요. 당신을 이루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나가 만드는 관계가 영혼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나와 당신의 만남이 어찌 무미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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