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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강선 Jul 25. 2024

시명상/들어주세요/작자 미상


들어주세요 - 작자 미상 / 앤소니 드 멜로 제공


 


당신에게 무언가를 고백할 때,

그리고 곧바로 당신이 충고를 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에게 무언가를 고백할 때,

내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를

당신이 말하기 시작할 때,

그 순간 당신은 내 감정을 무시한 것입니다.

당신에게 무언가를 고백할 때,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신이

진정으로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느낀다면

이상하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기도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침묵하시고

어떤 충고도 하지 않으시며

일을 직접 해결해 주려고도 하지 않으시니까요.

하나님은 다만 우리의 기도를

말없이 듣고 계실 뿐,

우리 스스로 해결하기를 믿으실 뿐이죠.

그러니 부탁입니다.

침묵 속에서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만일 말하고 싶다면.

당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것을

약속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93-95쪽 류시화 엮음


듣기란 참 쉬운 일이지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만 그 소리가 우리 의식으로 들어오는 때는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마음은 늘 할 일로 가득 차 있거나,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어서 듣는 것을 그저 흘려버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듣지만 막상 내가 듣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도 많은 거지요. 심지어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에도 그것이 무언지를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지금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세요. 주위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지나가는 차소리, 오토바이 소리, 세탁기 소리 혹은 제습기 소리, 환풍기 소리, 그리고 비행기 소리, 지나가는 누군가의 발소리, 우리의 주변은 참으로 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의 소리에 귀를 열었으나 마음을 닫은 것은 나에게 집중하고 싶기 때문일 겁니다. 혹은 시각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나의 의식이 말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럴 겁니다. 마음을 모두어 들을 때 그 소리가 그토록 새로운 것은, 혹은 그 소리가 그처럼 아름다운 것은. 그것은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듣고자 하는 마음이 소리를 따라가기 때문이지요.


그런가 하면 어떤 마음이 듣기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알고 있거나 더 잘 안다는 마음. 혹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서둘러 빠져나오는 거지요. 일상생활에서 누군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이내 충고나 조언을 하는 것은 아마도 후자가 더 많을 겁니다. 돕고 싶은 마음인 거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말하는 사람이 조언을 바랐던 것인지를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저 말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르지요. 


우리도 그러합니다. 말을 하는 동안, 내 이야기를 펼치는 우리는 말의 가닥을 잡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도 합니다. 스스로 깨닫는 거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들어주는 귀이지 조언하는 혀가 아닙니다. 상담하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듣는 일입니다. 


누군가 말을 꺼내자마자 조언을 주는 것은 듣는 일에 서툴러서가 아닐까요.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이 드물어서도이기도 할 겁니다.  삶은 소통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상은 대화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소통인지를 가만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 나의 말을 들어주기를 바라듯 상대도 그러합니다. 이 시의 화자가 하나님은 언제나 침묵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을 갖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만큼이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일은 들어주는 일이라서입니다. 자연이 안온한 것은 침묵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꽃들과 나무들과 숲, 호수, 바다와 산이 그토록 위안을 주는 것은 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들어주세요. 그리고 나 자신의 목소리도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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