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숨과 들숨 사이의 정지

by 이강선


커피



오랜만에 커피를 내렸습니다. 커피가 썩 향기롭지는 않습니다. 이 커피콩이 얼마나 되었지?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럴 정도로 오래되었다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커피콩을 갈다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정신없이 날뛰던 생각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저 커피가 알맞은 굵기로 갈아졌는지 물이 끓었는지 필터가 어디 있는지 그런 것만 따라갑니다.


그러고 보니 뭔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지난번 모임에서 전문가답지 못하다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시작한 지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초보자처럼 군다는 것이지요. 그 소리가 가슴을 쳤습니다. 전문가와 초보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때로 저는 그 차이가 서두름이라는 태도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닥치건 간에 차분하게 해결 방안을 찾거나 대처하는 태도가 전문가라면 초보자는 당황해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한편으로 초보라는 말은 어떤 것에 대한 신선한 시각이자 그 일에 대한 호기심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도 생각났습니다. 제게 미술 평론을 써보라고 권한 어떤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저의 초보다운 태도를 높이 샀습니다. 어떤 이론으로 오염되지 않는 시각으로 그림을 본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이런 생각은 극히 얕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리는 있지 않을까요. 전문가는 그 세계를 오래도록 접해와서 자신의 영역을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가 믿는 것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지요. 즉 자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 그 세계에서의 다양한 일들을 거쳐온 이의 경험을 통해 우러나온 것이지요. 혹자는 그것이 반응과 대응이라고도 부를 겁니다. 반응은 본능적입니다. 혹은 습관적입니다. 음식을 보면 침이 나오고 간식을 보면 손이 자동적으로 나가는, 이것이 반응입니다. 그러나 대응은 일단 의식을 거칩니다. 생각을 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지요. 전문가는 어떤 상황에서 대응을 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몇 달간 저는 대응이 아닌 반응을 해왔습니다.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저를 사로잡았던 듯합니다. 낯선 주제를 파고드느라 거기에 매달렸지요. 해서 하루 내내 어떤 쉼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쉼은 시간과 시간 사이, 혹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짬을 이야기합니다. 그건 마음챙김에서 익힌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걸 일러 수행이라고 합니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커피를 내려서 마셔왔습니다. 2004년인가요. 남대문에 가서 독일제 커피 그라인더를 샀지요. 그 이후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커피를 내린다는 것은 사실 귀찮은 일입니다. 커피콩을 준비하고 물을 끓이면서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로 컵을 데우고 필터를 옮긴 다음 커피 가루를 필터에 붓고 다시 물을 부어 커피를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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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인더. 아래 밑받침은 오래되어 바닥이 흔들거리자 남편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준 것.


커피콩 갈기, 물 끓이기, 커피 내리기. 아주 간단히 해서 3단계입니다. 즉 커피를 마시기까지 최소한 십여분은 걸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일을 무려 20여 년간 해왔습니다. 물론 암을 앓을 때는 제외해야겠지요. 아니 2009년 12월 암 진단을 받고는 커피를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요양원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한참 지나서야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니 거의 3,4년간은 커피를 끊었지요.


커피를 마시기 위한 그 과정이 제게는 준비이자 쉼이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고 나면 하루가 분명하게 흘러갔으니까요. 지나고 보면 어떻게든 살아왔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고 제대로 처리하는가의 여부가 나의 행복감을 결정지었다는 것이지요. 지난해 참 많이 다녔습니다. 광주, 수원, 대전 등, 도서관에서의 강의는 새로운 경험이었지요. 긴장해 있었습니다. 기차 시간, 낯선 주제, 낯선 사람들. 그래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으로 달려가야 하는 압박.


그러나 커피를 내리지 않게 된 결정적인 사유는 집 앞에 무인 카페가 생겨서입니다. 올여름과 가을 내내 그곳에서 일을 했지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무인카페에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제 커피 용량은 하루 한잔입니다. 한잔을 넘어서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것도 하루 종일 마셔야 합니다. 한 번에 마시기에 커피 한잔은 너무 많으니까요.


무인카페에 있자니 커피나 다른 음료를 마셔야 했습니다. 그러느라 커피를 내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 부작용이 바로 대응이 아닌 반응이었을까요? 카페에서는 늘 글을 썼습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쓰고 또 썼습니다. 결국 커피를 갈고 내리고 하는 시간처럼 오롯하게 그 동작 하나만을 바로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커피를 내리는 그 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문득 생각났습니다. 호흡은 날숨과 들숨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놓치는 것 하나는 날숨이 먼저라는 사실이지요. 우리는 들숨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들숨이 중요하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로는 날숨이 먼저입니다. 들숨은 그 이후지요. 날숨과 들숨 사이에는 반드시 정지가 있습니다. 정지는 다음으로 간다는 의미입니다. 정지는 그침이지만 그 정지는 숨 내보냄을 완성하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숨 들이쉼을 완성하는 상태이기도 하지요. 날숨과 들숨 사이의 정지가 없다면 그 무엇도 진행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숨을 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그 숨은 정지가 있어야 하는 행위였던 것이지요.


오늘 몇 달 만에 커피를 내리면서 아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에 오롯이 집중해서 지속하는 일. 그 일이 바로 수행인 것을요. 그러고 나니 초보자라는 지적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겠지요. 아니 다시 그 상태를 회복해야겠지요. 그가 지적한 또 하나는 지나치게 머리에만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행은 체득입니다. 습관화라는 말과 통합니다. 몸을 통해 익힌다는 것이지요.


이상하게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되 상처는 받지 않았습니다. 내가 가고 싶었던 방향이 맞는 건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을 뿐이지요. 조금 뻔뻔해졌나요. 아니면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자신이 생겨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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