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명상/그대의 길/울라브 하우게

by 이강선

그대의 길/울라브 하우게



그대가 갈 길을 표시해 놓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 미지의 세계에

저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은 그대의 길

오직 그대만이

그 길을 갈 것이고

되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대 또한

그대가 걸어온 길을 표시해놓지 않는다

황량한 언덕 위 그대가 걸어온 길을

바람이 지워버린다


『어린나무의 눈을 털어주다』, 임선기 역. 봄날의 책. 2017


누군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표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이 많았습니다. 역할 모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몹시도 바랐습니다. 아무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학문의 스승, 믿음의 스승, 책 속의 스승 할 것 없이 많이도 쫓아다녔지만 아무도 제 길을 일러주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지난해 수첩이 빼곡합니다. 이 많은 일정을 어찌 소화했는지요. 그런데 그 결과가 어디에 있을까요. 열심히 내 길을 만들었을 것이지만 걸어온 길은 흔적이 없습니다. 앞으로 갈 길에도 표시가 없습니다. 벌써 2월이지만 아직도 올해 어떻게 가야할지를 모릅니다.

그럼에도 어디선가 새순이 솟습니다. 꿈이 솟듯 생기가 솟습니다. 세상 어디에건 길은 있지요. 실패할지라도 그것은 길입니다. 나만이 만들 수 있는 길, 나만이 갈 길입니다.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 같지 않더라도 그것은 길입니다. 되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한. 그것은 삶의 정체입니다.

모호할 때는 모든 길이 동일해 보입니다. 하나씩 헤쳐 나가면서 버릴 때라야 비로소 내 길이 보입니다. 그 모든 실패에서 일어설 때라야 내 길이 굳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지나온 길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지금 서 있는 순간만이 분명할 뿐입니다.

제가 찾은 스승님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셨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그러나 제 길은 저만이 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겁니다. 울라브 하우게의 시를 옮긴 번역자 임선기는 체험을 말로써 옮길 수 있는 말이 시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겪었던 모든 것이 아닌, 그 순간에 자신을 절실하게 사로잡았던 느낌을 말로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하우게의 시가 이토록 절절하게 와닿은 그가 자신의 체험을 말로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명상/꺾여진 가지/황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