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보는 애도와 자기 돌봄' 강의에 참석했습니다. 백여명의 사람이 참석한 대규모 강의였습니다. 주최측도 놀라고 강의자도 기뻐한 강의였지요. 지금껏 수많은 이들이 이 모임에서 강의를 했지만 이토록 많은 인원이 참석한 적은 없었습니다.
강의자는 어떤 이론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림책을 읽어주었지요. 자신의 사명에 대한 그녀의 열의는 참으로 대단해서 중간중간 자신의 모임을 알리고 도우는 이가 전화번호와 모임의 주소를 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부드러운 태도 덕분이었을까요. 그런 일도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누구나 죽을 때 세 명의 친구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상실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라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읽어주거나 들어주거나 그림책을 보내주거나. 그것이 그녀가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위로는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그 길을 찾아낸다면요. 가장 좋은 위로는 자신이 하는 것이지요. 가장 좋은 자비는 자기 자비이듯이. 우리는 자신에게 무자비합니다. 슬픔도, 아픔도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어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지요.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얼마 전 남편상을 당한 친구입니다. 매번 씩씩한 모습을 보이던 친구가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보였지요. 그동안 무언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만한 글을 적어야겠다고 별렀습니다. 그건 충고도 조언도 아닙니다. 그녀처럼 씩씩한 사람에게는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글이 필요하다고 느껴서였습니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글이 필요하다고 여겼지요.
그녀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울리다 울리다 소리샘으로 넘어갈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바쁜가보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지요. 잠시 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우리는 아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물건을 치웠다고 더 정리할 것이라고 했지요. 나는 그녀의 남편이 운영했던 인터넷 신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했는지 몰랐었거든요. 그녀는 그런 세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꿈, 그분의 삶의 목적을 일부 이루고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가 꾸었던 꿈의 극히 일부였을 겁니다. 저도 알고 그녀도 알지요.
그녀는 남편이 설거지 하던 이야기를 했고 집안을 온통 뽁뽁이로 둘러쌌던 일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웃었습니다. 그건 제 남편이 한 일이었고 하고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생의 마지막 무렵에 몸이 아파 음식을 할 수없었던 남편이 자신이 음식을 만들면 다가와서 잔소리를 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잔소리, 그것도 제가 겪고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2000여권이나 되는 남편의 책을 일부 버렸고 앞으로도 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픔이 솟구치기 마련입니다. 일상은 강력합니다. 어디에나 배어있고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으니까요. 38년은 그냥 함께 산 세월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뿌리까지 내려갈 만큼 긴 시간입니다. 서로의 근거가 될 만큼 엄청난 세월입니다. 그들은 눈보라가 몰아치던 시절 겨울숲에 나란히 서서 눈보라를 함께 맞았던 나무들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슬픔의 뚜껑을 열었을 겁니다.
씩씩하던 그녀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저는 안아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그녀처럼 올곧게 살아온 이들에게는 그저 귀를 기울여주는 일이 최선이지요. 스스로 일어설 수 있고 혼자서 걸어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일은 아주 사소합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바빠서 전화조차 하지 못합니다. 얼마나 오래 전화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늘은 열 두시까지만 울라고 다시 한번 되풀이했습니다. 그녀는 또다시 울면서 웃었고 우리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남편이 밖에서 들어오지만 않았다면 더 오래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녀가 울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저 들어주는 일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강력한 자기 돌봄이니까요. 제가 주었던 말 중의 하나가 '당신은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 였습니다.
당신은 그곳에서 나는 이곳에서/도종환
어둠 속에서도 언제나 길찾아 흐르는 강물처럼
가꾸지 않아도 곧게 크는 숲속 나무들처럼
오간 이 가는 이 없는 산골짝에 소록소록 피는 꽃처럼
당신은 그곳에서 나는 여기서 우리도 그같이 피고지며 삽니다.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문학동네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