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여진 가지/황보순
오래 앓다 보면
병도 철이 들어
마음을 괴롭히지 않는다.
巨木이 한쪽 가지가 꺾였을 때
스스로 달래어 아픔을 잊어갈 때쯤
꺾여진 가지 옆엔 새 가지가 돋아나듯이
오랜 세월 자라난 巨木은
꺾여진 가지 대신
다른 가지가 더 많은 열매를 맺듯이
병이 철들어 맺어주는 열매도
주변의 어린나무들의 거름이 되어
사랑을 알고 사랑하게 된다는건
또 다른 기쁨일 게다.
『사는 演習』 靑翰文化社 1983
오래 앓다 보면 병도 철이 들어 괴롭히지 않는다, 예전에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병도 철이 든다니 그런 말이 어디 있어라고 반발하곤 했지요. 어린 시절, 자주 앓았습니다. 그때 만난 것이 저 표현이었지요. 그때는 병이 물러간다는 의미인 줄 알았습니다. 인간을 생각해서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한다는 말인 줄 알았지요.
철이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철이 든다는 것은 자신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는 의미이자, 수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어른의 자세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병도 철이 든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생각납니다. 어제 SNS에서 병과 친구 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친구끼리는 간혹 싸우기는 하지만 그 싸움은 오히려 우정을 더 돈독하게 해주지요. 친구는 서로 격려하고 아끼며 지지하는 대상입니다. 그러니 병이 친구라는 말은 싸우기도 하고 지지하면서 함께 간다는 의미입니다. 결과적으로 서로 익숙해지면서 받아들인다는 것이지요.
그 과정은 나무가 새 가지를 꺼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잘리거나 꺾인 나무는 상처 옆에서 어린 가지가 생겨납니다. 거목은 한쪽 가지가 꺾였을 때 그 옆에 새로운 가지를 뻗어 냅니다. 나무 안에 있는 생명을 꺼내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더 많은 잎과 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병든 사람, 상처받은 사람도 그러할까요? 상처를 받으면 꺾여서 사라지는 건 아닐까요. 화자는 ‘병이 철들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병이 철들면, 즉 병든 사람이 그 병과 싸우지 않고 병을 받아들이면 스스로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아플 동안은 아프다가 아픔이 물러나면 혹은 잠시 쉬면 감사하며 할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배운 것들, 깨달은 것들을 나누어줍니다. 육체적 고통도 마음의 고통도 어떤 배움을 가져옵니다. 그런 것들을 주위에 특히 어린 나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면, 그것들은 거름이 되어 그 어린 나무들을 자라게 해줄 겁니다. 그것이 사랑을 아는 일입니다. 그것이 사랑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롯한 기쁨이겠지요.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