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추웠던 2월 14일 강원도 사북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기차를 타고 산타마을에 갈 요량이었습니다. 기차는 열한시 반에 출발, 너무 일찍 도착했기에 역 주변에 있는 탄광문화 관광촌을 둘러보았습니다. 광부들의 생활상을 다룬 전시관에는 그 옛날을 기억할 수 있는 전시물들로 가득했습니다. 작업복, 장화, 당시 학교에서 공부했던 영어 교과서, 그 교과서를 지은 이는 놀랍게도 당시 이화여대 영문과 시간강사였습니다. 광부들이 독일로 가서 외화벌이를 했음을 보여주는 사진들로 빼곡한 전시실도 있었습니다.
연탄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연탄을 사용하는 곳은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1970년대만 해도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중요한 연료였습니다. 연탄은 고체입니다. 타고나면 재가 남습니다. 사용하고 난 연탄재는 골칫거리였습니다. 집에 공간이 넉넉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았던지라 그리고 연탄재를 치워가야 하므로 집집마다 연탄재를 밖에 내놓았습니다. 그러니 골목마다 연탄재를 보는 일이 흔했습니다.
출처: 경기일보 2024.12. 26
1980년대 광주 백운동에 살던 시절입니다. 비가 와 질척한 골목에 연탄재를 던져 깨뜨렸습니다. 군데군데 파여 물이 고여있던 골목은 우리들의 놀이 덕분에 발 디딜 곳이 생겼습니다. 마침 퇴근하시던 이웃집 아저씨가 그런 저를 보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동네 유일한 이층집이었고 자동차가 있는 집이었지요. 처음 보는 아저씨가 칭찬을 해주었던지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연탄재는 그처럼 좋은 용도로도 쓰였지만 술주정뱅이나 아이들의 장난감으로도 쓰였습니다. 누군가 그 연탄재를 발로 차는 일이 흔했습니다. 사방으로 흐트러진 그 연탄재를 치우려면 고역이었지요. 안도현 시인은 그 연탄재 이야기를 시로 만들었습니다. 첫 구절이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입니다. 이 구절은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로 읽힙니다. 이미 쓰레기지만 여기저기 어질러 놓아 치우기 힘들게 만드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지요.
그러나 두 번째 줄로 가면 시는 방향을 바꿉니다. ‘너는’ 하면서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이어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평생 자신을 바쳐 사랑해 본 적 있는지를, 평생 온 힘을 다하여 살아본 적이 있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연탄은 그 자신을 태워 온기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는 평생을 관통하는 물음이 됩니다. 너에게 무언가 있는가 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 하는, 삶 전체에 걸쳐 뜨겁게 살았는가 하는 평생을 바쳤는가 하는 질문이 되는 것이지요. 이 질문 앞에서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정이 어떻게 전환되고 확장되는지를 목격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폐기된 물질로 보이던 연탄재는, 시인의 시선 아래에서 뜨거운 헌신의 흔적으로 변모합니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이미지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을 읽어내게 됩니다. 그것은 후회일 수도 있고, 감사일 수도 있으며, 혹은 존재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감정이 이처럼 층위로 겹쳐지고, 어휘 간의 연결을 통해 그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 독자는 더 높은 차원의 문해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저는 우선 연탄재라는 어휘를 읽고 제 경험을 가져왔습니다. 그런 다음 연탄재가 지닌 상징적 의미에서 찔리는 느낌을 맛보았습니다. 그건 무언가에 너 자신을 온전히 헌신했던 적이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삶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그 느낌을 짚어내 글로 써내려갔습니다. 그러는 동안 제 뇌는 다양한 방면을 연결지었을 겁니다. 묵독, 낭독, 제 목소리 듣기, 촉각이라는 다중감각이 한꺼번에 발휘되었고 그렇게 해서 실마리를 찾아내고 연결이 되어 나왔을 겁니다.
이런 감정 읽기, 의미 찾기, 연결 짓기는 고급 리터러시의 핵심입니다. 단순히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따라가며 전체적인 구조 안에서 의미를 해석하고, 그 해석 속에서 나의 경험과 감정을 조율하는 힘. 이것이 바로 시 읽기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깊은 정신적 활동입니다.
긴 시에서 단 세 줄을 가져왔습니다. 세 줄짜리 시가 이렇다면, 수만 단어로 이뤄진 소설이나 에세이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 문장을 넘어서 맥락을 따라가며 의미를 읽는 능력은 단지 독서력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감정과 사고를 깊이 있게 다루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어휘가 아닌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이처럼 복합적인 감정을 찾아내게 됩니다. 이 일은 고급 리터러시 능력입니다. 단순한 어휘가 아니라 문장과 문장을 따라가는 동안 그 의미를 연결해 끝내 여러 문장이 말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세 줄짜리 시가 그렇다면 수십만 단어로 이뤄진 소설을 읽는 일은 더욱 뇌신경을 잘 연결하는 일일 겁니다.
명상 질문
오늘 읽은 시(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에서 처음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그 감정을 멈추어 관찰했을 때, 어떤 신체 감각이 떠올랐나요?
시를 다시 읽으며 어떤 새로운 감정이나 생각이 피어났나요?
이 경험을 통해 내 삶의 어느 순간과 연결되는지 짧게 적어보세요.